바이러스란 무엇인가.
2013년에 출간됐다가 메르스 덕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바이러스 행성’의 저자 칼 짐머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유전자 명령문(염기서열 코드) 몇 개를 감싸고 있는 단백질 껍데기다. 자신의 유전자와 단백질을 숙주 세포에 주입해 그 안에서 새로운 바이러스 사본(복제)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 한 마리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하루만에 1000마리로 불어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파악한 건 1950년대 무렵이다.
감기와 천식에 대한 기록은 3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57년이 되어서야 그 원인이 리노바이러스란 걸 알아냈다. 하지만 감기치료법은 아직 없다. 항생제는 세균에만 듣고 바이러스엔 소용없다. 항생제를 남용하는 건 세균의 내성을 길러 오히려 위험만 키운다.
독감을 유발하는 건 인플루엔자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조류에서 유래했다. 2005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AI(조류인플루엔자)는 H5N1으로 조류에게서 사람으로만 감염된다.
바이러스의 특징은 대부분 유전자가 10개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 복제에 서툴러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돌연변이는 적자생존이란 자연선택이 작용해 생존력이 뛰어나고 그만큼 치료백신을 만들기 힘들다.
전설 속의 ‘뿔난 토끼’도 바이러스의 작품이다. 인유두종바이러스(HPV)는 숙주세포를 죽이는 대신 숙주세포가 더 많이 복제되도록 한다. 숙주세포가 늘면 바이러스도 늘어난다. 이 바이러스용액을 건강한 토끼의 머리에 문지르기만 해도 뿔이 자라난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 사마귀나 젖꼭지 모양의 돌기도 유발한다.
동물바이러스는 처음 사람과 접촉할 때는 사람을 스필오버 숙주(spillover host)로만 쓴다. 즉 정거장처럼 활용해 감염상태가 오래 안 간다. 동물에게 적응한 바이러스는 사람 신체에서 드물게 살아남고 느리게 증식하며 사람 간 전파도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연변이가 생겨나 신체에 적응하고 사람 사이에 전파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진화를 시작한다. 침팬지에서 비롯된 HIV바이러스는 인간이 눈치도 채지 못한 6년여 간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켰다.
중국과 홍콩에서 창궐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원인이다. 그 바이러스는 중국 박쥐에서 시작돼 사향고양이에게 넘어갔다. 사향고양이는 중국 동물시장에서 흔한 동물이고 인간도 스필오버 숙주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차츰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염능력을 얻었다. 이 바이러스를 빨리 발견한 덕에 8000여 명이 감염되고 900여 명이 사망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렇게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갈수록 쉽게 옮겨오는 까닭은 오지 개발과 세계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오지의 동물들은 수백만 년 동안 우리에게 낯선 바이러스를 품어 왔는데 인류는 그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다. 지금 인류는 벌목을 하고, 광물을 캐고, 새 농장을 일구려고 오지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또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서로 교류하고 있다. 뇌에 염증을 일으키는 니파바이러스는 원래 정글 박쥐 몸에서만 살았다. 그 박쥐가 이제 정글이 개발되면서 사라지고 인간이 숙주가 되고 있다.
에볼라는 감염된 사람의 눈, 코, 입 등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고 죽게 만드는 끔찍한 바이러스지만 치사율이 너무 높아 되레 사람 간 감염이 잘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천연두는 3500만 년 전 인류역사에 첫 기록을 남긴 바이러스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를 휩쓸어 군대의 4분의 1과 수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1700년 대 농가에서 소젖을 짜는 여성은 절대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현상에 주목한 영국의사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처음 개발하면서 이젠 사실상 박멸됐다. 우두의 학명인 ‘Variolae vaccinae’에서 백신 접종(vaccination)이 유래했다.
흥미로운 건 바이러스란 단어가 ‘뱀의 독’과 ‘남성의 정액’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죽음과 생명이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조상을 찾아 올라가던 학자들은 DNA 탄생 이전에 바이러스가 존재했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조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146쪽, 1만3000원, 위즈덤하우스
jo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