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서 백작 부인이 바람둥이 남편인 알마미바 백작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옛날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유명한 이 아리아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청초하고 우아했다.
다재다능한 가수들이 즐겁고 대단한 장면을 잇따라 연출한 이날 무대에서 단연 돋보인 '이 순간'이었다.
그녀는 이와 함께 오페라가 단지 노래를 잘해야 하는 무대 장르가 아님도 증명했다.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가 특징인 이 오페라에서 홍혜경은 돋보이는 연기력과 표현력을 입증했다.
백작 부인은 과거에는 이발사였으나 현재는 알마미바 백작의 하인이 된 '피가로', 그의 연인이자 백작의 시녀인 '수잔나', 그리고 수잔나와 바람 피우려는 알마미바 백작이 이루는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이는 바람둥이 남편 알마미바 백작을 혼내주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거나, 능청스런 연기를 보여야 하는데 우아할 것만 같은 홍혜경은 다양한 모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1786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은 1782년 선보인 파이지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세비야의 이발사' 속 평민 로지나가 백작과 결혼해 '피가로의 결혼' 속 백작 부인이 된다. 본래 계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었으니 하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홍혜경의 백작 부인은 아량이 넓어 보인다.
세계 최고 수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로 통하는 그녀는 10년 만에 서는 고국의 오페라 무대에서 명불허전,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홍혜경과 수차례 호흡을 맞춘 폴라 윌리엄스가 연출한 이번 '피가로의 결혼'은 드라마틱함과 유쾌함이 잘 살아 있다.
홍혜경 외에 배우들도 발군인데 특히 수잔나 역의 류보프 페트로바는 안정된 가창력을 선보이다.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백작을 속이는 편지를 쓸 때 함께 2중창 '산들바람은 불어오는데'를 부르는데 홍혜경과 맞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을 보인다.
메트에서 활약 중인 라이언 맥키니의 백작은 '허당 끼'가 다분하지만 귀엽고, 내년 메트 데뷔를 앞둔 심기환의 피가로는 능청스럽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의 무대는 화려하지 않지만, 따듯한 색감으로 인물들의 밝은 정서를 대변한다.
무악오페라단 작품으로 '2015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이다.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예술총감독 표재순, 공연예술감독 김관동, 지휘 최승한. 1만~18만원. 영앤잎섬. 02-720-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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