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세 번째다. 장르가 달라지고, 화법이 부드러워져도 강제규는 강제규라는 것. 이 말에는 강제규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역시 뛰어나다거나 반대로 강제규의 성향과 이 영화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아 실망스러웠다는 가치판단이 없다. 말 그대로 강제규는 뭘 만들어도 강제규스럽다는 말이다.
성칠(박근형)은 집 근처 장수상회에서 일하는 성격 괴팍한 노인이다. 마을 주민들은 그가 탐탁지 않은데, 유일하게 성칠만이 그 지역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가 동네에 들어서길 바라는 장수상회 주변 상인들은 작전을 짠다. 성칠 옆집으로 이사온 꽃집 할머니 금님(윤여정)을 이용해 성칠이 재개발에 찬성하도록 회유하는 것. 시작이 어찌 됐든 성칠과 금님은 때늦은 연애를 시작한다.
노년의 사랑을 다뤘다고 해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 같은 영화를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장수상회'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다. 괴팍한 성격에 사랑에 어설프지만 마음 만은 순수한 남자와 감정에 솔직하지만 상처를 가진 듯한 여자의 로맨스 '할머니-할아버지 버전'이 '장수상회'다.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과 잠깐의 헤어짐, 화해와 재회라는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남녀 주인공이 연애를 하는 동안 주변 들러리들이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때 쯤 '감독이 강제규였지' 라고 떠올려봐야 한다.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강제규가 아니다. 강 감독은 '장수상회' 종반부에 충격적인 반전 하나와 신파 여럿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이 반전은 놀랍고, 신파는 수분이 충분해 감독의 의도는 먹힌다. 하지만 영화 전반엔 득보다 실이 커 보인다.
후반 20여 분에 상황이 싹 정리되면서 이전의 러닝타임은 종속적이고 허망하게 보인다. 재개발 이슈는 반전을 숨기기 위한 장황한 '맥거핀'에 불과하고, 두 노인의 로맨스는 이 반전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긴 지문이었다는 말인가. 강제규는 변하지 않았다. 멜로드라마를 액션블록버스터, 첩보블록버스터, 스릴러블록버스터처럼 다룬다. 종반 강펀치 한 방을 위해 초중반부 이야기를 짜맞춰 배치하는 오락영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최근 블록버스터영화에서도 종적을 감추고 있다.
영화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박근형·윤여정 두 배우가 한 스크린에서 연기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두 배우의 연기는 이미 평가영역을 벗어난다. 박근형과 윤여정의 '장수상회'연기는 항상 옳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표정 연기다. 윤여정은 나이를 초월해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근형은 무표정에 완전히 색다른 감정을 심어놓는다.
'장수상회'가 가족영화이고, 부담 없이 웃고 울며 즐길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았던 감독의 새로운 창작물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것이다. 강제규 감독의 연출 방식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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