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환·전명운의거 107주년' (中)"스티븐스는 세상의 적" 장인환의사 유언같은 진술

기사등록 2015/03/23 10:09:34 최종수정 2016/12/28 14:44:43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전명운 장인환의사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집중 보도한 1908년 3월24일자 샌프란시스코 콜에 따르면 스티븐스는 등과 허리에 두발의 총을 맞았지만 초기엔 상태가 좋았으며 병원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오히려 장인환의사의 오발로 어깨에 총을 맞은 전명운의사가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스티븐스는 이틀후 총탄제거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사진은 사건을 대서특필한 샌프란시스코 콜 1908년 3월24일 1면과 2면. 2015.03.21. <사진=샌프란시스코 콜 DB>  robin@newsis.com
이토 히로부미 스티븐스 저격에 경악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스티븐스는 등과 허리에 두발의 총을 맞았지만 초기엔 상태가 좋았다. 병원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오히려 장인환의사의 오발로 어깨에 총을 맞은 전명운의사가 위중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콜 등 미국 신문들은 3월25일까지만 해도 스티븐스의 경과가 좋은 반면 한국인 저격자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전했다.

 1908년 3월24일자 샌프란시스코 콜은 1면에 장인환의사의 비장한 유언과도 같은 진술을 실어 눈길을 끈다.

 "나는 스티븐스가 일본이 대한제국에서 자행하는 유혈 통치와 억압을 하게 된 중대한 원인이기때문에 총을 쏘았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죽음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를 쏘았다. 대한제국 정부의 고문인 스티븐스는 한국에서 보수를 받고 있지만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스티븐스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의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미국인들이 믿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행복해한다고 그가 거짓말을 했기때문에 총을 쏘았다. 스티븐스 저격은 일본에 대한 한민족의 증오심의 발로다. 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유가 없다면 삶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일본의 앞잡이들에 의해서 학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조용히 침묵할 수 있겠는가? 스티븐스는 고종 황제를 압박해 한국의 독립을 일본에 양도하는 조약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스티븐스는 이 세상의 적이고, 세계 평화를 교란하는 주범이다. 그래서 나는 총을 쏘았다. 나의 행동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조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명예롭고 고귀하게 죽어갈 것이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전명운 장인환의사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집중 보도한 1908년 3월24일자 샌프란시스코 콜에 따르면 스티븐스는 등과 허리에 두발의 총을 맞았지만 초기엔 상태가 좋았으며 병원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오히려 장인환의사의 오발로 어깨에 총을 맞은 전명운의사가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스티븐스는 이틀후 총탄제거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사진은 샌프란시스코 콜 1908년 3월24일 1면. 2015.03.21. <사진=샌프란시스코 콜 DB>  robin@newsis.com
 샌프란시스코 콜은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인 유진 휴리안(Eugene P. Hourihan)이 위중한 상태의 전명운의사를 상대로 확보한 진술을 실었다.

 "나는 25세로 조국을 위해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하지만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질 낮은 국가로 보는 것은 굉장히 유감이다. 내가 떠난 이래로 대한제국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일본은 힘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여 몇 가지 조약을 강요해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와 친지들이 일본인들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있다. 신문에서 스티븐스의 기사를 읽은 뒤에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스티븐스의 사진을 한 장 구했고 워싱턴으로 떠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페리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쏘려고 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권총으로 때리고 달아났다. 나는 당시 혼자 있었다. 저는 이 사람(장인환)이 누군지 모른다. 내 계획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지금 상처 부위가 굉장히 아프다. 죽고 싶을 뿐이다.”

 한편 대한제국의 합병을 진행해온 일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스티븐스 저격사건에 경악했다. 다른 곳도 아닌 미국땅에서 일본의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 콜은 '이토 히로부미,  자신의 고문에 대한 암살시도에 몸서리치다'라는 도쿄발 기사에서 "사람들은 스티븐스 암살시도가 간접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공격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스티븐스는 이토의 주요 고문이자 가까운 친구였다. 스티븐스는 지난 3월3일 일본을 떠날 때 미국 외무부 장관 오브라이언을 비롯한 200여 외교관들의 환호를 받았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전명운 장인환의사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집중 보도한 1908년 3월24일자 샌프란시스코 콜에 따르면 스티븐스는 등과 허리에 두발의 총을 맞았지만 초기엔 상태가 좋았으며 병원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오히려 장인환의사의 오발로 어깨에 총을 맞은 전명운의사가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스티븐스는 이틀후 총탄제거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사진은 3면 톱기사로 실린 의병대장 이인영(李麟榮)의 성전선언문 전문 원본(檄告在外國同胞文). 2015.03.21. <사진=샌프란시스코 콜 DB>  robin@newsis.com
 "일본 신문들은 모두 암살 시도에 관한 호외를 발행했다. 정보에 따르면 스티븐스의 총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가 조선인들에게 암살당하다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던 사람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스티븐스 암살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인 논평을 끌어내고 있다."

 스티븐스 저격 당시 함께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일본총영사 조조 고이케(Chozo Koike)는 이날 인터뷰에서 "스티븐스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친구였다. 그는 한국에서 어떤 적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티븐스는 2년 전 대한제국 정부의 고문이 되면서부터 정력적으로 조선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일했다. 덕분에 한국의 상황은 백배 이상 개선되었다. 스티븐스가 한국의 배신자이고, 일본 정부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다. 일본 정부의 추천을 통해서 한국 정부의 고문이 되었지만, 그는 언제나 한국을 위해서 일했고, 한국인들과 함께 한 애국자였다. 스티븐스를 공격한 사람들은 그가 해온 노력들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사실을 호도했다.

 봇물처럼 터진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은둔의 왕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Japan's Aggression in the Hermit Kingdom)'에서 일본의 무자비한 폭정에 관한 기사로 이어졌다.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전명운 장인환의사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집중 보도한 1908년 3월24일자 샌프란시스코 콜에 따르면 스티븐스는 등과 허리에 두발의 총을 맞았지만 초기엔 상태가 좋았으며 병원에서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오히려 장인환의사의 오발로 어깨에 총을 맞은 전명운의사가 위중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스티븐스는 이틀후 총탄제거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사진은 3면 톱기사로 실린 의병대장 이인영(李麟榮)의 성전선언문 전문 원본(檄告在外國同胞文). 2015.03.21. <사진=샌프란시스코 콜 DB>  robin@newsis.com
 "일본이 지난 5년간 더욱 강하게 한국의 목을 졸랐기 때문에 한국의 애국자들은 분노해 스티븐스(Stevens) 공격같은 사건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일본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2주일뒤 한국이 일본의 허락없이는 행동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긴 의정서에 서명했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관리를 받아들이라는 명령에 동의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하고 고종과 황실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했다. 하지만 고종은 외국의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명성황후가 일본에서 온 암살자들한테 시해 당했기 때문에 궁궐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이들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하나의 국가인 대한제국을 완전히 말살하는 데에는 겨우 7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2면 하단에 실린 '한국인들이 복수 선언(Korean Declare War of Vengeance)'에서는 '의병(the righteous army)'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신문은 "한국인들은 가능한 한 증오하는 일본인과 일본의 동맹자들을 살해하는 대의명분에 목숨을 바치고 있다. '의병'은 일본인을 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러운 국민이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3면 톱기사로 장인환 전명운 의사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의병대장 이인영(李麟榮)의 성전선언문 전문을 한자원본(檄告在外國同胞文)과 함께 실었다.

 "전 세계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알린다. 조국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는 인간 본성의 주요한 원칙이다. 오호 통재라! 비극적인 시대가 우리의 조국과 우리 동포들에게 도래하였다. 5백 년 동안 지속된 왕조에 의해서 교육받고, 4천년 동안 지속된 우리의 혈통에 의해 성장한 우리들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섬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조국을 급습하였고, 잔인한 심장을 가진 자신들의 야만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일본인들은 고종 황제를 폐위시켰고, 마을을 파괴하였고, 형제를 학살하였고, 토지를 약탈하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적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적이다. 인류의 평화를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포들이여, 단결하여 조국에 신명을 바치고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 모든 일본인, 일본인의 앞잡이, 일본의 동맹자들, 야만적인 군인들을 근절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모든 강대국 관료들에게 야만적인 일본의 잔인한 행동 때문에 전 세계의 적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세계는 지금 우리 민족이 비겁하고 야만적이라고 경멸하고 있다..우리는 부끄럽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소홀히 했다. 만약 우리가 처음 문호를 개방했을 때 주어진 가능성을 이용했더라면, 지금처럼 가련한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천년에 한번꼴인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활하고 잔인한 이웃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했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가장 우의가 두터운 친구 사이여야 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본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잔인무도하다. 우리가 과일과 술을 보내면, 일본은 돌과 칼로 되갚아준다. 일본의 문학, 행정, 법률, 예술과 과학은 모두 우리에게서 빌려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비정상적인 이웃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침략을 하고 있다. 오호, 통재라! 우리 대한제국의 발전에 혹독한 적만 될 뿐인 일본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우리는 어리석게도 우정을 내세운 일본을 믿어버리고, 일본이 새롭게 획득한 서구 지식을 전해주리라 생각하면서 옛날일을 잊고 미래를 고대했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잔인한 성격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탐욕스러운 보호자들은 한국인들을 모두 학살할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이상 일본은 우리를 속여 왔다. 자신들의 사악한 계획을 자행하면서 달콤한 말로 우리를 현혹시켰다..일본은 우리 의병의 봉기를 큰 나무를 옮기려는 벌레의 시도에 비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의는 우리 편이며 우리는 결국 정의에 배반하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목숨을 일본인의 총과 칼에 바칠 것이다. 제일 앞줄의 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다. 오늘은 패배하더라도 내일 다시 공격할 것이다. 일본인들을 모두 멸절시킬 때까지."

 - 단기 4240년 조선의병대장 이인영(Yie Lin 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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