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김광석은 위로다…뮤지컬 '그날들'

기사등록 2014/10/22 18:30:53 최종수정 2016/12/28 13:33:28
↑뮤지컬 '그날들' 포스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1일 두 번째 시즌 공연을 개막한 뮤지컬 '그날들'은 연출가의 숨은 의도를 알면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가객' 김광석(1964~1996)의 노래들로 엮은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김광석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고 그를 떠올릴 힌트도 없다. 김광석이 살아있던 1992년을 오가는 것이 연관성의 전부다.

 김광석의 아우라는 그럼에도 아른거린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들이 공연 내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와 공연 전반에 배인 아련한 정서다. 

 작품 기저의 분위기는 '위로'다. 작·연출을 맡은 장유정(38)은 지난해 초연 전 제작발표회에서 "그(김광석)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그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김광석의 노래는 위로를 줬다. 그런데 그는 위로를 되돌려주기 전 일찍 세상과 이별했다.

 '그날들'에는 김광석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 나온다.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인 청와대가 배경이다. 사라진 대통령의 딸과 수행 경호원의 행방을 뒤쫓는 경호부장 '정학' 앞에 흔적이 드러나는 경호원 동기생 '무영'이다. 그는 1992년 '그녀'와 함께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군사정권이 막바지에 달했던 1990년대 초. 서슬 퍼런 권력 앞에 비겁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들은 또 다른 '정학'이고, 일찍 떠난 '무영'은 또 다른 김광석이거나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이들이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경호원이다. 장 연출은 당시 "그래서 (김광석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숭고한 목숨을 지키는 경호원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에요"라고 말했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먼지가 되어' '그날들' 등 김광석이 부른 곡들을 듣다보면 위로를 받거나 누군가를 위로하고픈 마음이 든다.  

 정학이 무영과 그녀의 자취를 찾아가는 스토리는 미스터리하게 전개된다. 김광석과 관련한 신비한 기운까지 끌어안는다. 종종 등장하는 액션은 극에 긴박감을 안긴다. 멜로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가 중첩된다.  

【서울=뉴시스】강진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리온연습실에서 열린 뮤지컬 ‘그날들’ 연습실 공개에서 출연배우들이 주요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그날들’은 故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들로만 만든 최초의 창작 뮤지컬로 오는 21일부터 2015년 1월 18일까지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2014.10.06.  marrymero@newsis.com
 정학과 무영이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 무영과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익숙한 장치들이지만 촌스럽다기보다 작품 분위기에 걸맞는 연출법이다. 정학이 인생에 회한을 느낄 때 "조금씩 멀어져간다"('서른즈음에')가, 무영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떠나보낼 때 "사랑했지만, 그녀를 사랑했지만"('사랑했지만')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창작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개막 첫날부터 일본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정학 역의 이건명, 무영 역의 지창욱 등 한류스타들이 출연한 탓이다. 이건명은 앞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위터에 '그날들'이 김광석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남기자, 일본 팬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찾아듣고 좋다는 멘션을 연달아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날들'이 아이돌을 넘어 'K팝 범위'를 확장하는데 기여하는 셈이다. 다만 일본 팬들을 위한 자막이 부족했다.

 지난 공연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정학과 (가상의) 무영이 만나는 장면까지 벌어졌던 이야기가 급히 마무리되는 등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나 순간순간 감정의 농도는 짙어졌다. 이미 한차례 의기투합한 배우와 스태프의 익숙한 감정이입 덕분이다. 공연 전반에서 묻어나는 위로의 결이 우직하고 탄탄해졌다. 초연 당시 과도하게 느껴졌던 편곡은 관객의 감정을 몰고가는데 효과적인 장치로도 들린다.  

 정학 역으로 이번에 새로 합류한 이건명은 예스런 느낌으로 관객을 추억에 젖게 한다. 무영 역의 지창욱은 초연 때처럼 밝고 생기가 넘친다. 공연이 끝나면 김광석 4집 수록곡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가 귀에 남는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 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지난날을 마냥 잊으라는 뜻은 아닐 테다. 막바지에 흘러나오는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노랫말이 겹쳐 떠오른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잊혀져 간 꿈들을 / 다시 만나고파"  

 2015년 1월18일까지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정학 역에 유준상·강태을·최재웅, 무영 역에 김승대·오종혁·슈퍼주니어 규현, 편곡·음악감독 장소영, 무디대자이너 박동우, 안무감독 신선호.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55분(인터미션 20분).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02-541-7110

 김광석은 위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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