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여성들이 남편의 출세를 위해 대사를 미리 알려주고 전쟁을 준비시키는 등 눈에 보이는 일들만 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내조를 국한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현실의 부인들은 무엇보다도 남편이 스스로 자신의 내부를 다잡을 수 있도록 채찍질했다. 이는 앞서 과거 준비생의 부인으로 살아야 했던 많은 부인들이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남편이 공부를 해서 입신출세하기 만을 바라지는 않는다.”(199쪽)
류정월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가 펴낸 ‘선비의 아내’는 선비의 아내로 평생을 보내야 했던 평범한 조선 여성들의 일상을 추적한다.
혼인, 사랑, 첩에 대한 질투, 집안 살림과 경제 활동, 남편 내조, 출세를 위한 헌신, 여가 생활, 재난 극복, 죽음 등 아홉 가지 주제다. 다양한 문학 사료를 인용하며 조선 여성들의 결혼 생활을 살펴보고 있다. 평범한 일상뿐 아니라 당시 사회적 제도와 여성의 역할을 현대적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상적인 며느릿감은 실제 집안일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살림을 꾸려나갈 능력을 갖춰야 했다.
조선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도 꽤 엄격했다. 특히 남성들이 기대하는 부인의 역에 충실해야 했다. 송시열은 ‘계녀서’를 통해 결혼하는 장녀에게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생활인으로서 지켜야 할 사항을 적어 보냈다고 한다.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아내는 첩을 둔 남편을 질투하거나 질책하기보다는 걱정하는 것임을 보여야 하며, 윷놀이 등 남녀가 함께 놀이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첩을 두어도 질투하지 않고 감내하며, 과거 공부하는 청백리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며 살아야 했던 부인들을 보면 자칫 시대가 만든 희생양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류 교수는 그러나 조선 여성들을 불쌍하고 가엾은 희생양 만으로 그리지 않는다. “가장의 책임을 방기하는 남편 대신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감당한 사람,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유지한 여성이라는 주체로 볼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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