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은 국내에서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으로 생애 첫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해 12일 만에 이룬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간 흥행기록이다. 개봉 첫날 68만명으로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찍더니 700만 명까지 매일 약 10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하정우·강동원은 '명량'이 개봉하자 상영관 대부분을 내줘야 했다. 탁월한 오락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손예진·김남길도 최민식의 회오리 바다에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다.
짧은 출연이지만 최민식은 할리우드 영화 '루시'에서도 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초능력을 얻게 된 '루시'(스칼릿 조핸슨)를 끝까지 괴롭히는 마약조직의 보스 '미스터 장'으로 등장한다. 4000만 달러를 들인 '루시'는 뤼크 베송 감독의 작품 중 최초로 북미 흥행수익 1억 달러가 확실시된다.
'명량'을 본 관객들은 "최민식이기에 가능했던 성적"이라고 엄지를 치켜든다. "연기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머릿속 상상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을 봤다" "말이 필요 없었다" 등의 반응이다. '루시'에 대해서도 호평일색이다. 캐나다 미디어 트위치필름은 "강렬한 악마 최민식, 그의 연기는 정말로 놀라웠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비중은 작지만, 그가 영화를 구했다"고 평했다.
최민식은 '명량' 첫 촬영부터 전쟁에 나가는 이순신 장군처럼 비장하게 등장, 끝까지 감정을 유지했다. 이 같은 자세는 동료 배우들에게도 전파됐다. 대다수 출연진은 카메라의 불이 꺼져도 그대로 조선시대에 머물렀다. 거북선이 불 탈 때는 감독의 '컷' 사인에도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최민식의 연기는 휴식기 전과 후가 다르다. 많이 절제돼 있다"고 짚는다. "이순신 역할은 감정이 과잉될 가능성이 크다. 또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라 연기를 잘 해봤자 본전이다. 최민식은 감정을 가져가면서도 억누르며 연기했다. 그런 부분들이 관객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 본인의 감정이 과잉돼 자칫 눈물이라도 보이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맥이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민식은 어느날 갑자기 뛰쳐나온 배우가 아니다. 20여년 전부터 연기력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1988년 영화 '수증기'로 데뷔해 '넘버3'(1997) '쉬리'(1999) '해피엔드'(1999) '파이란'(2001) 등을 성공시켰다. 그가 출연한 영화 '취화선'(2002)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다. 15년 동안 이유를 모르고 사설 감금방에 갇혀 살았던 '오대수'로 출연한 영화 '올드보이'(2003)에게 칸은 심사위원 대상을 안겼다. 이후에도 '주먹이 운다'(2005) '친절한 금자씨'(2005) 등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 평론가는 "최민식이 배우로서 연기를 좀 더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프로의식, 직업적인 면이 공백 전보다 더 성장했다. 어깨의 힘도 많이 빠졌다. 선이 굵은 배우가 세월이 쌓이고 인생을 경험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부드러운 부분까지 챙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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