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 선조는 도산서원에 편액을 내리기로 하고 당대 최고 명필인 석봉(石峯) 한호에게 편액 글씨를 쓰게 한다. 1575년 6월 어느 날, 선조는 석봉을 어전에 불러 편액 글씨를 쓸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지 알려 주지 않고 부르는대로 쓰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도산서원’ 편액 글씨를 쓰라고 하면, 젊은 석봉(당시 32세)이 퇴계와 도산서원의 명성이나 위세에 눌려 글쓰기를 양보하거나 마음이 흔들려 글씨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씨 쓰는 순서는 거꾸로 하기로 했다.
‘현판기행,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는 궁궐, 고택, 사원, 사찰, 정자, 누각 등 우리의 옛 현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 교양서다. 정설과 야사를 포함한 역사와 당대 학문의 흐름, 서체의 발달 등 문화를 다뤘다.
저자는 이렇게 옛 현판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글씨 자체가 가진 가치뿐 아니라 그 문구가 담긴 의미가 주는 가르침, 그 현판에 담긴 일화, 글씨를 쓴 서예가의 예술혼 등 유무형의 값진 유산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문화적 가치보다 현판은 홀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판이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추사 글씨인 봉은사 ‘판전’(서울시유형문화재 제84호) 현판과 명종 글씨인 영주 ‘소수서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0호) 현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도 인정한 김종호의 글씨까지 사찰과 서원은 물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에서 마음에 점을 찍던 정자까지 우리나라 현판의 역사를 모두 훑었다.
옛 선비들이 올라 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던 정자와 누각에 걸린 현판을 살펴보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자와 누각에 걸린 현판’, 조선 유학의 산실인 서원과 강당에 걸린 현판을 소개하는 ‘서원과 강당에 걸린 현판’, 전국 각지의 절과 암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현판을 전하는 ‘사철에 걸린 현판’, 고택이나 궁궐, 중국 자금성 등에 걸린 현판을 소개하는 ‘더 알아보는 현판 이야기’ 등 모두 35곳의 이야기가 담겼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서, 예서, 행서 등 서체의 종류와 변천사를 다뤘다.
swryu@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