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청의 대표인물로 입지 구축

기사등록 2014/06/05 01:41:15 최종수정 2016/12/28 12:52:02
【천안=뉴시스】유효상 기자 =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청권 대표인물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그는 4년전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 또는 남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강한 이미지로 보수세력의 견제를 받아왔다.

 그러나 안 지사는 지난 4년 동안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이제 '충청의 대표주자 안희정'으로 우뚝 섰다.

 그는 4년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안좋은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재향군인회,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고엽제 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직접 다가가 자신의 대북관과 이념을 설명했고 충남도정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동의를 얻어냈다.

 그는 무엇보다 일 잘하는 충남도정을 만들기 위해 직접 들녘과 산업현장으로 뛰어다니면서 농업인, 노동자, 기업인들을 만나 잘사는 충남지역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면서 해법을 찾아냈다.

 중앙정부의 간섭과 차별, 야당 소속 도지사, 학생 운동권 출신 등의 핸디캡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공부하는 자세를 항상 보였고 공무원들보다 솔선해서 모든 일에 앞장섰다.

 그 결과 안희정의 진정성을 도민들이 알아주기 시작했고 처음에 "행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외면하던 공무원들도 "우리 도지사님"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그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안희정은 압도적으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은 물론 집권 여당의 강한 견제 속에서도 스스로 버텨냄으로써 이제 누가 뭐래도 '충청의 대표인물'로 평가를 받게 됐다.

 그는 어린 시절 충남 논산시 연무읍 작은 시골마을에서 철물점집의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장군이 되는 것을 꿈꿨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세상에 대한 고민은 대학 진학 후 더욱 깊어졌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1989년 김덕룡 의원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0년 3당 합당이 일어났을 때 그는 ‘꼬마 민주당’에 남아 야당의 길을 고수했다.  

 `정치인 안희정'을 본격적으로 담금질한 것은 1994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노무현이라는 큰 스승과 함께하며 민주주의와 역사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02년 대선에서 큰 역할을 했고 ‘좌희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5년은 고난의 세월이었다. 대선 자금에 관한 모든 책임을 졌고 참여정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았다. 그럼에도 2007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극에 달했을 때 참여정부평가포럼을 이끌며 참여정부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08년엔 고향 논산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했다. 하지만 공천심사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탈당하고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승복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0년 그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국민통합, 국가균형발전의 꿈을 잇겠다는 포부로 충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했다. "충남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 2인자 정치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커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최초의 민주당 소속 도지사가 됐다.  

 이제 그는 이번 선거에서 "지난 4년 민선 5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매 맺고 성과를 내겠다. 낡은 정치를 끝내고 희망의 정치를 하겠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충청도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지도자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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