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펙셀(APEXEL)주식회사의 강대일 상무와 이 회사 마케팅 팀장은 “규제개혁을 하면 외화를 한 해에 100조원씩 벌어오겠다”는 글이 적힌 폭1m 정도 되는 판지를 들고 청와대 서편 로터리에 서있어 오가는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중소기업 규모인 이 회사가 개발한 나노기술은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최첨단 기술이다. 물질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최소 단위로 쪼개는 기술로 에이펙셀이 세계 특허를 갖고 있다.
연간 100조원씩 외화를 벌어오겠다는 말이 믿기 어렵기는 했지만 호기심이 발동해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에이펙셀에 관한 얘기는 몇 년 전에도 기사화 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지원을 안 해준다는 것이다. 오히려 담당자가 “기술을 나한데 소상하게 얘기해주면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도록 해 주겠다”며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완성해낸 최첨단 기술을 거저 낚아채려는 수작을 부린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더욱이 5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관계 공무원들이 핑퐁을 치고, 온갖 핑계로 지원을 해주기는커녕 아직도 기술을 뽑아가려는 엉뚱한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펙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이 이 지경이니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라고 안타까워한다. 학자들도 공무원과 한편이라고 비판한다.
규제는 곧 공무원들의 이권이고, 규제개혁은 공무원들과의 전쟁이다. 공무원들의 밥그릇을 깨지 않고는 절대로 규제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규제를 만들어내며 인허가권을 행사하며 맛을 들여온 공무원들이 규제의 칼을 쉽게 버릴 리 없다는 예상은 에이펙셀의 경우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 어떤 기술이기에 연간 100조원 매출을 공언하고, 내용을 잘 아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들이 기술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일까?
에이펙셀이 갖고 있는 기술은 ‘나노(NANO) 입자’를 만드는 기술이다. 나노는 마이크로 미터의 1000분의 1 크기이다. 어떤 물질의 고유한 물리적 화학성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최소 입자 단위로 분쇄하는 기술인데, 이 기술은 전 세계에서 에이펙셀 만이 갖고 있는 기술이라고 에이펙셀의 강 상무는 설명했다. 선진국들도 나름대로 나노기술을 개발했지만, 가장 작으면서도 물질의 특성을 유지한 기술을 보유한 곳은 에이펙셀 뿐이라는 것이다.
“손톱 밑 가시를 잘 볼 수 있는 눈과 곪기 전에 효과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기술과 도구만 갖춘다면 현 정부는 크게 성공할 겁니다. 우리 회사의 손톱 및 가시를 뽑아주시면 1~2년 내에 경제 활성화는 물론, 세계 최대의 수출 강국이 되도록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강 상무는 “에이펙셀이 개발한 나노 분쇄 기술은 전자 반도체 항공 우주 태양광 재생에너지 의약품 농수축산물가공, 철강, 생필품 등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는 기술이며, 이 기술이 적용되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높아져 수출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의해 우리나라가 올해부터 매년 현미를 40만톤씩(㎏당 500원, 국내산은 ㎏당 2000원) 수입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농민들을 완전히 도태시킬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 골칫거리인 농산물 수입개방의 파급효과도 단 칼에 해결해줄 기술이기도 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현미의 효능을 유지하면서 나노 입자로 분쇄하면 건강식품과 의약품으로 개발이 가능해 소비처가 생긴다는 것이다.
에이펙셀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손톱 밑 가시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부의 지원이 없어 그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이펙셀은 자사의 나노 기술을 ‘킬러 어플리케이션’이라고 표현했다. 킬러 어플리케이션은 단순한 상품이나 발명품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시장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인식과 문화코드까지 바꿔버리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금속활자, 증기기관, 자동차 TV, 아스팔트, 비행기 등이 그것의 범주에 든다.
9·11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화재로 인한 열에 의해 콘크리트가 부서짐으로써 무너진 것인데,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폭열방지제를 만드는 것도 나노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제철소에서 철물을 뽑아내고 남은 슬래그(쇳물찌꺼기)는 처치 곤란한 폐기물인데 이것을 나노기술로 분쇄해 콘크리트를 만들면 화재에서 콘크리트 건물을 지켜주는 ‘나노 슬래그’라는 최고의 건축자재가 탄생한다. 에이펙셀은 2010년 8월부터 포스코와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해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우주선, 잠수함, 자동차 등에도 이 나노 기술이 적용된다. 자동차의 경우 가볍고 강도가 높은 소재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초경량 자동차 소재는 나노기술로 철판을 아주 얇게 만들고, 그 위에 나노 세라믹 코팅을 융착해서 새로운 개념의 철강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개발이 가능하다.
우주선에도 나노 세라믹 기술이 필수적이다. 공기와의 마찰열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하기 위해 표면에 세라믹 구조물을 붙이는데 세라믹 기술이 허술하면 그 세라믹의 품질이 저하된다. 미국의 챌린저 폭발사고도 표면에 붙일 세라믹이 떨어져나가서 발생한 비극이다. 세라믹 입자가 커서 잘 붙지 않는데 나노기술로 만든 고품격 세라믹은 접착이 잘 된다.
잠수함에도 세라믹 융착기술을 적용하면 함정 표면에 조개나 해조류들이 달라붙지 않아 속도를 높이고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현재 해군에서는 함정의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 독일에서 도료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매년 그 비용이 엄청나고 칠하는 작업에도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계속 칠해야 하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수입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고 귀띔한다.
에이펙셀의 나노기술은 2004년 대한민국 기술대전에서 원래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나 주최 측의 권유로 대상을 S전자에 양보했다.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기술 1등(대상)은 S전자, 2등(국무총리상)은 테크월드(에이펙셀의 전신)이 수상했다.
강 상무는 “그 당시 협상이 들어왔다. 주최 측으로부터 ‘다음에 잘해 줄테니 S전자에 양보해달라’ 제안이 들어왔다”고 털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한다.
“심사위원회에서 대상 선정됐으니 수상 준비하라고 했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 S전자에게 양보해달라, 그래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대상을 받은 S전자의 기술만 대서특필됐다.”
산업자원부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 대상을 받은 S전자의 기술은 ‘세계 최초의 고선명 57인치 LCD TV’였다. 강 상무는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이 TV기술은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에이펙셀의 나노기술은 아직도 세계 최첨단의 기술이다”고 강조했다.
에이펙셀의 나노기술은 의약품 생산에도 적용된다. 나노기술로 분쇄한 칼슘제품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국방성에서 에이펙셀의 나노 칼슘 제품을 미군 병사들을 위한 건강식품으로 일부 보급했는데, 종전에 쓰던 유명회사 제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해 추가로 전 미군에게 공급할 물량을 요구했다. 그런데 에이펙셀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미군에 공급할 나노칼슘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하게 되면 나노 기술을 미국에 공개해야 하고 결국 미국에 기술을 빼앗기게 될 것이 우려됐다.”
에이펙셀은 나노기술은 앞으로 한국을 수십 년을 먹여 살리고 부자로 만들어줄 기술인데, 정부가 나노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낼 공장을 설립할 자금지원을 한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나노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면 4조원 이상의 지원금을 썼지만, 아직도 나노기술을 개발해 냈다는 쾌보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많은 돈을 투입하고도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다는 것은 많은 의혹을 제기하게 만든다.
지원금 한 푼 못 받은 중소기업은 세계가 탐내는 기술을 개발해 냈지만, 공무원들은 이를 인정하지도 않고, 제품생산에 나설 지원도 안 해주고 있다. 이것이 에이펙셀이 대통령의 규제개혁 생방송 회의가 열린 날 피켓시위를 벌인 이유다.
양순석 프리랜서 기고가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71호(4월7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