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마저 해맑은 열살 해봄 양이 해사한 얼굴로 아빠 김태석 해군원사의 묘비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아빠가 마흔다섯 용사들과 함께 잠든 게 벌써 4년 전, 해봄이는 어여쁜 초등학생이 돼 아빠 묘비 앞에 섰다.
학교 친구들에게 아빠를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얘기한다는 해봄이 뒤에서 고 김 원사의 유족들은 말없이 눈물만 훔쳤다.
전날부터 내린 봄비가 이어진 26일 대전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천안함 4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숭고한 호국 혼 지켜갈 내 조국'이라는 주제 아래 엄수된 이날 추모식엔 천안함 용사들의 유족을 비롯해 정홍원 국무총리, 여야 지도부, 각 부처 장관, 시민과 학생 등 40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이날 오전 10시 시작된 추모식은 천안함 전사 장병에 대한 묵념, 천안함 피격사건 경과를 담은 영상물 상영, 유가족과 각계 대표들의 헌화·분향 등으로 채워졌다.
한 시간 남짓한 추모식이 끝나고도 천안함 유족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다시 46용사들의 묘역으로 향했다.
천안함 전사자 묘역에서 만난 고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5)씨는 "요즘 들어 아들이 어릴 적 밥을 먹던 모습으로 계속 꿈에 나타난다"며 잠시 말끝을 흐리다 "우리 국민 모두가 천안함 장병들의 부모라고 생각하고 부디 그 희생을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정종율 해군상사의 아버지 정해균(68)씨는 먼저 간 아들의 묘비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고 이상준 중사와 같이 천안함 근무를 했던 이태훈(27)씨는 만기전역해 다시 묘역을 찾았다.
천안함에서 병기병으로 근무한 이씨는 "이상준 중사님은 함 전반에 걸친 지식과 직무에 대해 저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신 분"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고 김태석 원사의 묘비 앞엔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딸이 어머니와 함께 서 있었다.
그의 막내딸 해봄 양은 빗방울처럼 통통 튀는 손길로 아빠가 잠든 묘비를 어루만졌다.
'아빠 얼굴이 기억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요. 아빠 사진 보면 그냥 신기하던데…"라고 또박또박 밝은 표정으로 해봄 양은 대답했다.
그 모습에 외려 더욱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추모메시지를 통해 "안타까운 희생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천안함 피격이 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면서 "남과 북이 함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시대를 열어갈 때 천안함 용사들과 고 한주호 준위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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