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개연성 높은 ‘사고’다. 산파를 불러 집에서 아이를 낳던 전근대적 방식을 대신해 병원에서 출산을 치르게 되면서 아이가 바뀌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기막힌 사연들이 뉴스를 타고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혈연이 아님을 영원히 모른 채 묻힌 케이스들도 꽤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병원에서 뒤바뀌며 운명이 달라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TV드라마 ‘가을동화’(2000), ‘반짝반짝 빛나는’(2011)과 같은 픽션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부잣집 장남과 가난한집 막내가 병원에서 바뀐 것이 60년 만에 밝혀진 극적인 사건이 화제가 됐다. 부유한 집 장남으로 자란 아이는 사립학교와 대학을 나와 부동산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빈곤층 집안의 막내로 자란 아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근근이 야간학교를 다녔고 병든 형제를 돌보며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트럭운전사로 일했다. 이러한 사실은 부유한 가정의 동생 삼형제가 맏형이 자신들과 닮지 않았음을 미심쩍게 여겨 DNA검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미 친부모는 세상을 떠난 뒤다.
19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51) 감독의 일본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러한 사례조사 끝에 있음직한 비극적 상황을 신파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인간적 깨달음과 부모로서의 완성, 화해와 용서, 이해와 관용 등을 담아 조곤조곤 풀어냈다.
일본의 사회구조와 정서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 공감도가 높다. 료타는 주말을 희생해가며 직장에 매달리는 샐러리맨으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엄하게 대할 뿐이다. 도쿄 시내 고급아파트에 사는 외동아이 케이타는 벌써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고 사립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학원에 다닌다. 미도리가 전업주부인 반면, 동네사람들을 상대로 전구나 팔며 살아가는 유다이의 아내 유카리(마키 요코)는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도시락가게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유다이가 워낙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덕분에 육아에 대한 부담은 던 상태다. 여리고 욕심없는 성격의 케이타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유약하다. 료타를 닮아 키가 크고 집념이 강한 류세이는 활달하기 그지없다.
유들유들하고 낙천적인 유다이 부부는 “우리는 아무 아이나 키워도 상관없다”며 “개나 고양이라도 그렇게 쉬 맞교환할 수 없다”는 쪽이고, 마음이 약한 미도리는 “난 엄마인데 깨닫지 못하다니”라며 자책감에 시달린다. 케이타가 아내를 닮았다고만 생각했던 료타는 자신을 닮은 아이에게 집착을 드러내며 “두 아이 모두 우리에게 달라”며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아이들로서는 어느 쪽에 더 정이 갈지 안 봐도 뻔하다. 이 지점에서 료타는 좌절감을 느끼며 서서히 아버지로서의 스스로를 되돌이켜보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에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료타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자 “왜”라고 묻는 류세이에게 말문이 막힌다. 이 장면이 엇비슷한 소재를 지닌 여타 범작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생을 뒤집어 업는 엄청난 사건이 들이닥쳤는데 등장인물들은 순종적 일본인답게 유달리 침착하고 조용하다. 대신 주인공 료타는 부모의 역할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한다. 질투와 스트레스로 범죄를 저지른 간호사와 의붓아들을 보며 무너진 그는 마음을 열지 못했던 새어머니에게 진심의 전화를 걸기도 한다.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이 생이라면, 이것은 분명 그에게 아버지로서의 기회다. 미칠 듯한 상황 속에 던져진 료타는 깊은 자각과 인간적 성숙을 향해 한 발 나아간다. 고레에다 감독은 감정은 절제하면서도 세세한 묘사, 꼼꼼한 설정들로 주인공의 내면의 갈등과 변화를 이해 가능하도록 따라잡는다. 특히 각본에 무척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인물들이 보여주는 관계와 사소한 언행, 대비되는 두 가족 설정,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흘러나온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짠한 감동과 함께 부모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보도록 만든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도심 아파트 사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아무도 모른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해체를 경험한 초등학생이 바라는 기적을 다룬 작품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09)에 이은 고레에다의 가족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2013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산세바스티안영화제·벤쿠버영화제·상파울루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9월 드림웍스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렸다. 드림웍스 공동설립자이자 이번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67) 감독으로부터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15일 열린 아시아태평양영화제(APFF)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탔다.
한동안 국제영화제에서 중국과 한국 영화들에 밀렸던 일본 영화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작품으로 꼽히며 일본에서 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신화를 일궜다. 시사적 소재와 고전적 드라마의 힘을 바탕으로 섬세한 일본적 정서와 통찰력이 어우러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영화의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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