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 단독]이슈진단 '말많은 전자개표기, 이번엔 서류위조 수출 의혹'-필리핀 납품 둘러싼 비리 수사…외교 마찰 우려

기사등록 2013/08/14 09:25:51 최종수정 2016/12/28 07:54:31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지난 2003년 필리핀에 자동개표기(일명 전자개표기)를 수출하면서 위조된 납품실적증명서(사진)가 제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은 위원회 및 당시 위원장 이름 등의 영문 표기가 한국에서 사용되는 것과 달라 위조 여부 등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leeds@newsis.com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선거 때마다 프로그램 조작설이 나돌고 개표 중 각종 오류가 발생해 불신의 대상이 됐던 투표용지자동분류기(일명 전자개표기)가 지난 2003년 필리핀 납품을 둘러싸고 서류 위조 의혹 등 새로운 문제가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자동개표기 국제입찰에 참여한 한국기업의 제출 서류에 문제가 발견돼 한국산 전자개표기에 대한 사용중지와 지불대금 회수 명령이 내려졌고, 추가적인 비리혐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국기업이 제출한 납품실적증명서에 대해 위조 의혹까지 제기돼 자칫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비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필리핀에서 문제가 확산되기 전에 우리 관련 부처와 수사당국이 신속하게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계기로 전자개표기에 대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개표조작 가능성 논란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관심이 재점화할 것으로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

◇‘전자개표기’ 필리핀 수출했으나 사용금지 처분

 필리핀의 메가퍼시픽 컨소시엄(Mega Pacific Consortium)은 2004년 5월 필리핀 대통령선거에 대비해 필리핀 선관위가 2003년 2월 실시한 자동개표기 국제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돼 자동개표기를 납품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한국 대기업 그룹 계열사인 S사가 핵심기업으로 참여했다. S사는 메가퍼시픽 컨소시엄에 약 1000만 달러어치의 OMR(광학마크 인식기술)방식 자동개표기(전자개표기) 1991대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필리핀 선관위에 제출된 납품실적증명서는 2003년 3월3일자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선위)위원장 명의로 발행됐다. 여기엔 “S사의 자동개표기(Counting Machines)가 2000만 명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한 전국 규모의 선거에 2번 사용됐음을 입증한다”고 명시돼 있다.

 뉴시스아이즈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 납품실적증명서의 선관위원장 사인 등 곳곳에 위조 흔적이 발견된다.  

 S사가 납품한 자동개표기는 2004년 1월 4일 필리핀 대법원에 의해 사용금지, 대금회수, 비리의혹에 대한 추가 조사 실시 등의 판결을 받았다. 이는 필리핀정보기술협회와 전산 전문가들이 필리핀 대법원에 메가퍼시픽 컨소시엄이 입찰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낙찰받았다며 계약 무효 및 사용금지 소송을 냈고,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줘 사용금지 및 지불대금 회수 명령, 관련 비리에 대한 수사와 수사내용 정기적 보고 명령 등을 내린 것이다.  

 소송 결과에 따른 사법·행정적 절차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불대금 회수와 관련비리 수사 및 정기적인 보고 등 대법원 명령에 따라 지불대금회수는 필리핀 정부의 법률대행기구인 OSG(Office of Solicitor General)에서 추진 중이며, 관련 비리혐의 수사도 현재 필리핀 공직자부패수사처에서 진행 중이다.


 ◇‘전자개표기’ 선거무효소송에 단골 등장

 우리나라의 전자개표기는 2002년 6월13일 제3회 지방선거에 시범적으로 도입됐고, 그해 12월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전면 도입됐다.

 대선 직후 전자개표기 조작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지지자들에 의해 전자개표기 조작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유포되자 서청원 당 대표와 지도부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당선무효 소송과 재검표를 요구했고 투표함 증거보전신청을 냈다. 당시 투표 결과를 보면 총 투표자 2478만4963명 중 노무현 후보가 1201만4277표(48.9%), 이회창 후보가 1144만3297표(46.6%)를 기록했다. 표차는 2.3%인 57만980표였다.

 재검표 결과는 한나라당의 예상을 훨씬 빗나갔다. 대상이 된 80개 개표구의 1104만9311표를 재검표 했으나 오류표는 1117표로 미미해 한나라당은 소송을 취하하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16대 대선 무효소송은 한나라당과 별도로 2003년에 보수단체인 ‘주권찾기시민모임’의 공동대표인 이기권씨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냈지만 대법원 제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2004년 5월31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심판을 맡은 대법원 제3부의 판결문에는 16대 대선에 사용된 개표기의 구성과 작동과정, 개표업무 진행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며 원고 측이 주장하는 “수작업이 없었으므로 선거법상 규정된 개표행위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과 “전자개표기에 의한 조작의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17일 오후 중앙선관위 주최 개표 공개시연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베드민턴장에서 시민들이 개표시연을 관람하고 있다.  amin2@newsis.com
 이 판결에 불복하는 측에서는 “재판부가 개표소에서 참관인들이 기계가 분류한 투표용지를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했고, 100매씩 묶음으로 만들었다고 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한다.

 2007년 12월 치러진 제17대 대통령선거 때도 당선무효와 재검표 주장은 똑같이 나왔다. 무려 531만 7708표라는 큰 차이가 났는데도 패배한 측에서 재검표론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18대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선거무효소송과 국회에 재검표를 요구하는 청원이 제기됐다. “선관위가 개표를 조작했다”며 UN의 개입을 촉구하고, 미국 백악관 청원 홈페이지에까지 “한국의 18대 대선의 표 집계는 잘못된 것이니 도와 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모두가 전자개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중선위는 국회에서 개표과정 시연회까지 열었으나 의혹 제기자들을 승복시키지는 못했다.

 18대 대선 개표결과 투표율 75.8%(총 유권자 4050만7842명 중 3072만2910명 투표)에 박근혜 후보 1577만3116표(51.6%), 문재인 후보 1469만2625표(48.0%였다)를 각각 득표해 표차는 108만496표였다.

 당선무효 주장을 펴는 진영에서는 ‘전자개표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또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 해킹에 의해 결과가 조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중선위 측에서는 “전자개표기 도입은 공직선거법 제178조 제4항이 위임한 바에 따라 공직선거관리규칙 제99조 3항(개표의 진행) ‘구·시·군위원회는 개표에 있어서 투표지를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별로 구분하거나 계산에 필요한 기계장치 또는 전산조직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과 공직선거법 부칙 제5조(전산조직에 의한 개표)에 의해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자개표기’ 믿을 만한 기계인가?

 대선이 치러지는 5년마다 전자개표기가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이 기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해킹이 가능하다’ ‘프로그램이 미리 입력돼 있다’ 등이 전자개표기 불신론자들의 주장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선 기계의 명칭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이 기계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가 명칭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통칭 ‘전자개표기’라고 불리는 개표기계장치가 처음으로 선거에 전면 도입된 2002년 12월19일의 제16대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판결로 선거무효 소송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원고인 보수우파 성향의 시민 가운데는 판결에 수긍하지 않고 아직도 의심을 갖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전자개표기의 프로그램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여야 보안자문 위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위·변조 검사를 거쳐 사용하기 때문에 조작이나 오류로 인한 문제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분류기를 통과한 투표지 이미지 파일을 보관하고, 투표지 증거보전명령이 내려지면 투표함을 보관해 실물 증거자료를 확보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부정이나 조작의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흔히 전자개표기라고 불리는 개표자동장치는 엄밀히 말하면 투표지자동분류기(Ballot Paper Sorting Machine)와 자동개표기(Automated Counting Machine) 2가지로 나뉜다.

 자동개표기는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분류하고 참관인들이 수작업으로 표를 세는 과정 없이 기계가 전적으로 표를 읽고 개표하는 장치이며, 분류기는 기계장치가 표를 후보별, 또는 미분류별로 분류해 놓으면 참관인이 분류된 표를 세어 득표수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나라는 선거법상 개표기를 보조장치로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고 참관인과 선거관리위원장이 최종 육안으로 확인해서 집계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선 자동개표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leeds@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40호(8월13일~1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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