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책꽂이-'파과' 외 4권

기사등록 2013/08/05 15:18:55 최종수정 2016/12/28 07:52:02
【서울=뉴시스】오제일 박영주 김정환 이재훈 유상우 기자  ▲파과    구병모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가 구병모가 새 장편소설 ‘파과’를 펴냈다. 첫 장편소설 ‘아가미’,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통해 상상력을 뽐냈던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을 탄생시킨다.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60대 노부인’이다.  열다섯 살에 더부살이하던 당숙의 집에서 쫓기듯 나온 주인공 ‘조각’은 ‘류’를 만나며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업에 뛰어 든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실패 없이 처리하며 업계의 대모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176쪽)  하지만 작가는 프로페셔널한 킬러 ‘조각’이 아닌 애완동물 밥을 주는 것도 잃어버릴 정도로 세월을 쌓은 노부인 ‘조각’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책은 무정하고 냉혹하게 자신을 단련해온, 희로애락에 무감했던, 철저한 단절과 고독 속에 살아온 ‘조각’의 노년을 다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332~333쪽)  환갑을 넘긴 ‘조각’은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손수레를 정리해주며,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읽는다. 청부살인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정체를 눈감아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도 품는다. 작가는 새삼스레 마주하는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332쪽)  ‘으깨진 과일’을 뜻하는 제목 ‘파과(破果)’는 소설의 후반부 으깨진 인생이라도 살아내겠다는 주인공 ‘조각’의 모습을 통해 ‘빛나는 시절’, ‘파과(破瓜)’로 변주된다.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마지막까지 대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나는 일하는 엄마다    김영란·양선아·천가일·황금희·이숙인·권혁란·유숙열·신혜원·한연엽 지음  르네상스 펴냄  우리 사회는 형식적으로 ‘남녀가 평등하게 일하는 사회’가 된 듯하다. 아이를 기르는 여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하나 둘 생기고 있는가 하면 ‘엄마 가산점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는 여자들이 많다. 육아휴직제도는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고 남편들은 가사와 육아를 여자의 몫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육아를 엄마에게만 떠넘기는 열악한 현실에서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은 엄마들은 일과 육아의 병행이라는 과도한 짐을 진 채 1분 1초를 아껴가며 살아야 한다.  ‘나는 일하는 엄마다’를 쓴 9명의 엄마들은 각기 다양한 직업과 환경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해 좌충우돌,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지금 한창 육아의 현장에서 씨름을 하고 있는 30대 엄마부터 자녀가 성인이 된 50대 엄마까지 이들의 육아 이야기다.  이 책은 육아 지침도 아니고 성공담도 아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필자와 독자들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 선배 엄마들의 솔직한 경험담 속에서 독자는 위로와 지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저자는 “선배 엄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하는 엄마들에게 더할 수 없이 큰 위로이자 응원가가 된다. 또 편하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 육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함께 걷자, 둘레 한 바퀴                 이종성 지음  비채 펴냄  제주도의 ‘올레길’이 히트를 치자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XX길’을 조성했다. 그 중에는 그야말로 이름만 그럴듯한 곳도 있긴 하지만, 올레길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제대로 된 길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북한산의 ‘둘레길’이다. 서울시 6개구와 경기도 3개시에 걸쳐 있다. 북한산,  도봉산을 한 바퀴 도는 이 길의 총 길이는 63.2km다.  서울 성산중 교사이자 시인인 이종성씨는 둘레길을 걸으며 시 300편을 쓰고, 사진 500컷을 찍고, 답사를 1000번 이상하며 북한산 둘레길의 속살과 진면목을 짚어본 뒤 이를 포토에세이집 ‘다함께 걷자 둘레 한 바퀴’로 냈다.  이 책은 둘레길의 일부 구간만을 소개한 기존의 여행서와 달리 ‘1구간, 숲의 고요가 마음을 토닥이는 소나무숲길’, ‘2구간,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은 순례길’, ‘3구간, 무한한 평화의 시간으로 이끄는 흰구름길’, ‘4구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깃든 솔샘길’, ‘5구간, 무거운 마음을 날려보내는 명상길’ 등 총 21개장에 걸쳐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을 알차게 정리했다.  저자는 곳곳에 자신이 쓴 시와 찍은 사진들을 올려 자신이 걸으면서 느낀 감동을 독자들과 나누려 했다. 이미 둘레길을 여러 번 걸었지만 걷는데 급급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면 이 책을 보며 넓은 시야와 깊은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둘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걸으면서 떠올린다면 그 맛이 더욱 진하고 그윽할 것이다.  다만 걷기를 할 때 주의할 점, 준비할 것 등을 상세히 알려주는 책은 아니니 그런 정보는 다른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따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공존의 길을 묻다  강상중 외 지음  서해문집 펴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로 통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쇠퇴,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엇갈리면서 19~20세기 서구로 넘어갔던 패권이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앞날은 잿빛이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이 동아시아에서 만나면서 한반도 연안이 미중 갈등으로 변질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와 올해는 한반도 주변의 강국들의 지도자가 모두 교체됐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2기),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신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한국의 박근혜, 북한의 김정은 등이 그들이다. 이들 새 지도자들은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어떤 행보를 펼칠 것인가. 한반도는 어떤 평화의 해법을 찾아야 하나.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 공존의 길을 묻다’는 6·25 동란 정전(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 전문 관료 학자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묶은 대담집이다. 격동의 시대에 접어든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는 정책과 비전, 지혜를 모아보고자 했다.  평화운동 NGO인 ‘평화네트워크’가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조엘 위트,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학 교수 등 각국의 대표 인사 15명에게 동아시아 ‘공존의 길’을 물어봤다.  ‘재일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 정교수’ 출신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강상중 교수는 “동아시아의 희망은 한국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진보(리버럴) 혹은 대안 세력 없이 ‘국가 중심주의’로 흐르는 일본과 달리, 민주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는 시민의 정치 참여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그린 교수(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국장)는 일본의 우경화, 특히 군사력 강화는 오히려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는, 북한의 절대 통치의 시기는 끝났다고 주장하며 이제 ‘당 국가’ 체제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재래식 군사력 감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북한이 핵 보유를 통해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하는 만큼, 군축을 해야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교사는 어떻게 말하는가             칙 무어만·낸시 웨버 지음  한문화 펴냄  “참 잘했어요!”라는 말은 평가형 칭찬의 대표적인 예다. 평가형 칭찬에 길든 아이들은 지속해서 칭찬을 듣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이 아이들은 자신을 칭찬하는 법을 모른다. 평가형 칭찬을 남발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더욱 집착한다.  “미안하다고 사과해!”라는 말은 교사가 종종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대화법이다. 교사는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겠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는 “화가 나도 꾹 참고 속상해하지 마, 진짜 감정은 억누르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이다. 교사가 화난 학생들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는 정보를 얻고자 “누가 그랬니?”라고 묻는다. 그러나 이 대화법은 문제의 핵심에서 비켜나게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보다 누가 문제인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누군가를 패배자로 만들고 ‘나쁜 아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해결책을 찾기보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교실은 침묵의 공간이 아니다. 한 명의 교사와 여러 학생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실 말하기의 80%는 교사의 말이다. 교사의 말은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설명이나 “해!” “~하지 마!”와 같은 통제, 요구, 명령이 대부분이다.  ‘지혜로운 교사는 어떻게 말하는가’는 교사가 날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를 묻는다. 아울러 교실에서 학생들과 좀 더 효과적이고 평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대화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자존감을 높이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 말, 선택과 책임을 기르는 말, 상황에 대처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우는 말,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말, 서로 협력하며 유대감을 키우는 말 등 긍정적인 교사의 대화법을 알려준다. 아이와 갈등을 키우는 말, 아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말 등 교사가 교실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대화법도 담고 있다.  특히 “참 잘했어요” “네가 자랑스러워”와 같이 아이를 칭찬하거나 격려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 중에 오히려 ‘독’이 되는 말도 있음을 지적한다.  kafka@newsis.com  gogogirl@newsis.com  ace@newsis.com  realpaper7@newsis.com  swryu@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39호(8월6일~12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