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봉준호, 한국인 맞아?…국내에서 경험한적 없는 영화 '설국열차'

기사등록 2013/07/24 07:31:00 최종수정 2016/12/28 07:48:32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2004년 겨울 봉준호(44) 감독이 들른 만화방에게 감사인사를 먼저 전한다. 그곳에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가 없었다면 이처럼 놀라운 결과물을 만날 수 없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설국열차' 탑승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CW-7이라는 냉각제를 과도하게 살포하면서 이뤄진다. 기상이변으로 지상의 생명체는 꽁꽁 얼어붙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 타 목숨을 유지한다.

 18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열차는 작은 세계다. 꼬리 칸의 사람들은 춥고 배고픈 이들로 가난에 허덕인다. 주식량인 '단백질 블록'이 제공되기 전 한 달 동안은 서로가 서로의 먹잇감일 정도로 치열하고 처참했다. 반면, 선택된 자들이 살고 있는 앞쪽 칸은 호화 객실이다. 술과 마약(크로놀) 천지다.

 앞 칸에서 원하는 인력인 어린 아이들, 럭셔리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바이올린 연주가는도 꼬리 칸에서 착출된다. 매일 특정 시간에 '점호'를 한다. 열차의 2인자인 총리 메이슨(틸다 스윈턴)은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연설한다. 행여 반항이라도 했다가는 팔 한쪽, 다리 하나 내놓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꼬리 칸'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터스(크리스 에번스)는 긴 세월을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킨다.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존 허트), 에드가(제이미 벨),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등이 힘을 보탠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크로놀' 중독자로 감옥에 가있던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트레인 베이비' 요나(고아성)의 도움으로 열차의 앞부분을 향해 돌진한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초반은 커터스를 중심으로 '앞 칸'으로 향하기 위한 작전을 짜는 시간이다. 지루해할 틈이 없다. 잿빛으로 어둡게 묘사된 '꼬리 칸'은 그곳 사람들의 표정과 어우러지며 느낌을 제대로 살린다.

 커터스 일행이 한 칸씩 앞으로 진격할 때마다 충돌하는 두 세력 간 액션은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더 크게 와 닿는다. 좁은 공간, 피할 수 없기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몸부림에 공감할 수 있다. 앞으로 향할수록 다채로워지는 컬러와 화려한 분위기는 또 다른 볼거리다.

 '괴물'에서 봉 감독과의 작업을 즐긴 송강호(46)와 고아성(21)의 코믹 앙상블은 예측할 만하다. 17년 간 열차의 1인자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오른팔 노릇을 해온 틸다 스윈턴(53)의 존재감은 감탄을 절로 부른다. 이 영화에서 스윈턴은 카리스마와 코믹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경이로운 표정연기를 선보인다.

 커터스를 따라 열차의 맨 앞 칸인 엔진에 다다랐을 때는 쾌감보다는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허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후반부에 예상치 못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봉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강렬하게 함축하고 있는 부분이다. '설국열차' 속 세상은 곧 현대사회의 축소판이다다. 앞 칸과 꼬리 칸에서 현저히 드러나는 계급, 빈익빈 부익부, 희생, 강압된 질서와 무법자, 그리고 희망 등이다.

 이 열차에 올랐다면, 봉 감독이 전작 '괴물'(2006), '마더'(2009) 등에서 보여준 한국 특유의 감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신, 할리우드도 거부하지 않을 신선한 보편성을 발견하면 된다.

 영화는 칙칙폭폭 매끈하게 달려간다. 간혹 20세 이상조차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고통스럽고 잔인한 장면은 감수해야 한다. 8월1일 개봉, 상영시간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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