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는 대한민국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왕’을 꿈꿀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삼국, 고려, 조선 등 왕조시대에만 해도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었다. 왕이 될 신분이 못되는 사람은 왕을 만들고, 왕을 도와 그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뜻을 펴고자 했다. 킹 메이커이자 참모다.
하지만 킹 메이커에게는 한계와 약점이 있다. 평생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살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칫 잘못해 그 1인의 눈 밖에 난다면, 그 1인이 마음만 바꿔먹는다면 토사구팽당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그런 위험한 줄타기를 한 킹 메이커들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역사학자 이덕일(52)씨가 쓴 ‘왕과 나’다.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 한 가지 코드’라는 부제처럼 킹 메이커 11명의 왕 만들기, 그 성공과 실패담을 통해 11개의 코드를 뽑아냈다.
김춘추를 신라의 첫 진골 출신 왕인 제29대 태종무열왕으로 만든 김유신의 ‘어젠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해 태조가 될 수 있도록 도운 신숭겸·배현경·복지겸·홍유의 ‘헌신’, 주몽을 고구려 제1대 동명성왕으로 세운 부인 소서노의 ‘시야’,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해 태조가 될 수 있도록 한 정도전의 ‘사상’, 조선 제4대 세종의 적이었으나 훗날 오히려 평생의 동지가 돼 성군의 발판을 제공한 황희의 ‘시운’, 조선 제17대 효종이 대동법을 시행해 영정조 시대 경제 발전을 이룩할 기틀을 마련하도록 일조한 김육의 ‘정책’, 아들인 고려 제7대 목종을 통해 뜻을 펼치려다 쿠데타 세력에 의해 끝내 좌절한 제5대 경종의 부인 천추태후의 ‘기상’, 명청 교체기 줄타기 외교로 안전을 도모하려 한 조선 제15대 광해군의 뜻을 받든 강홍립의 ‘악역’, 미천한 신분을 딛고 조선 제3대 태종의 신임을 받아 한양도성을 쌓은 박자청의 ‘실력’, 남편(추존왕 덕종)의 요절로 인한 좌절을 아들 ‘성종’을 통해 풀었던, 그래서 결국 자승자박한 인수대비의 ‘맹목’, 조선 제22대 정조가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공신이었으나 지나친 야망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 홍국영의 ‘역린’ 등이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장점은 일의 시작과 과정, 결말까지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역사는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그러나 앞선 수레가 잘못된 길을 가다가 거꾸러지는 것을 보고도 다시 그 길을 가는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아마도 욕심이나 오만이 눈을 가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역사 앞에서 겸허해햐 한다. 겸허하게 성찰하는 자에게만 역사는 미래의 문을 살짝 열어준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신분 격차는 없지만 재력의 유무가 그 사람이 왕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돈 많은 집안의 자녀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출세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가까워진다면 이제 킹 메이커라도 잘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추락하지 않는 킹 메이커가 될 수 있도록, 읽어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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