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 최고수준의 양성평등·인권의식을 지닌 복지국가이지만, 과거 유럽의 빈국 중 하나인 스웨덴의 생활상이 드러난다. 현시점 한국의 노동자 계층으로 옮겨놓아도 될 만큼 사실적인 상황들이다.
청과물점에서 일하는 17세 모니카(해리엇 안데르손)는 불우한 환경이 지긋지긋하다. 층간소음으로 이웃간 다툼이 그칠 새 없는 좁은 아파트에서 줄줄이 딸린 동생들과 부엌에 놓인 침대에서 잠을 자야하고, 아버지는 술을 먹고 들어오면 종종 폭력을 휘두른다. 직장에서는 유부남 동료가 대놓고 성추행을 해댄다. 하류층에서 자란 모니카는 양갓집 규수들과 달리 거칠 것 없는 성격에다 가식도 없다. 그릇가게 점원인 19세 해리(라스 에크보리)에게 솔직한 애정표현을 하고, 자신보다 처지가 나은 그의 집을 부러워하며 중산층 주부가 되는 것을 꿈꾼다.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하는 중 남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와 달리 하품을 하며 지루해하는 남자에 대한 묘사, 집에 고모가 와있다며 늦은 시간 여자친구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 여자가 임신했다고 부랴부랴 결혼시키는 보수적 행태는 한국의 정서와 비슷해 웃음이 난다.
뒷모습뿐이기는 하나 여주인공의 과감한 야외 누드 장면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파격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이 장면만 선정적으로 부각되기 일쑤였는데, 미국시장에서는 악명 높은 프로듀서 크로거 밥(1906~1980)이 62분 분량의 에로영화 ‘모니카, 불량소녀 이야기’로 재편집, 영어 더빙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96분 분량의 오리지널 영화가 그대로 개봉된 것은 2007년이다)
순박한 듯하면서도 원초적 관능을 마음껏 드러낸 스무살 안데르손의 연기는 베리만 감독으로부터 “스웨덴 영화에서 해리엇 안데르손보다 자유분방하게 에로틱한 매력을 선보인 소녀는 없었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를 매혹시키면서 베리만의 첫 이혼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으나 그 후에도 안데르손은 ‘톱밥과 금속 조각’(1953), ‘한여름 밤의 미소’(1955),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1961), ‘외침과 속삭임’(1972), ‘화니와 알렉산더’(1982) 등 베리만의 대표작들에 출연하면서 감독의 대표적 뮤즈 중 하나로 기억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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