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7월 6일이면 나라 잃은 티베트 사람들의 가슴은 설렌다. 바로 현 제14대 달라이라마의 생신이기 때문이다. 1951년 16세의 나이로 친정(親政)을 시작한 그는 1959년 3월 31일 티베트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고생하는 그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마음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 찾기’에서 보이듯이 노령의 그는 인류에게 화·미움·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제시하고, 전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세계인을 행복으로 이끄는 가장 호감을 받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한 슬픔과 동정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그간의 세계 평화를 강조하는 모습에 대해 서구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주며 감사의 뜻을 표한다.
2012년 유럽연합(EU), 2010년 류샤오보, 2009년 버락 오바마, 2007년 앨 고어,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2002년 지미 카터, 2001년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 2000년 김대중 등 이 상을 수여한 노벨위원회의 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1989년 달라이라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서구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결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적합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달라이라마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훌륭한 수행자이기 때문이다.
1935년에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0월7일 중국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을 맞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처연하게 국제사회에 구원을 호소했지만, 한국전쟁에 여념이 없던 UN은 티베트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닌 빚을 진 때문인지 우리나라 불자들의 달라이라마 사랑은 지극하다. 올해도 78세를 맞이하는 달라이라마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법회 날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 ‘땐슉 또는 탠슉’이라고 하는 이 장수 기원 법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10년 7월 6일 제75회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생신을 기념하는 행사가 경기도 일산 여래사과 부산 광성사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특히 광성사에는 승보종찰인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이 직접 달라이라마의 건강을 기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1년 3월10일 달라이라마는 정치에서 은퇴하고 난 후 그동안 둘로 나뉘어 진행된 사찰 규모의 행사가 달라이라마 존자 제76회 생신기념과 장수기원 법회라는 이름으로 전국규모로 한군데에서 행해졌다. ‘달라이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출간 기념행사를 겸한 이날 행사는 종로구 부암동 하림각(서울AW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무상사, 여래사, 구룡사 등에서 400여명의 사부대중(스님과 신도 등)이 참석한 가운데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달라이라마의 동생인 나리 린포체의 부인으로 다람살라 전 교육부 장관과 티베트 사미니회(TNP) 총재인 린첸 칸도가 함께했다.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준비위원회(원장 텐진 남카 스님)와 티베트 망명정부 동아시아 대표인 락빠초교가 노력한 결과로 티베트망명정부의 대사관 격이라고 주장하는 티베트하우스 코리아의 한국에서의 첫 활동개시라는 의미를 있기도 한다.
2012년 7월 4일 달라이라마 존자 제77회 생신기념 및 장수기원 법회는 티베트의 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참가한 디키초양 외무부 장관은 티베트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한국과의 연대활동을 강화하기를 기대했다. 달라이라마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종교의 탄생 이유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함이며 21세기는 물질문명의 시대로 사람들은 행복을 물질로부터 얻고자 한다. 하지만 물질적 충족감과 행복은 연관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종교의 역할과 책임감이 더욱 중요해지고 커졌다.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 종교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서로 경외하고, 존경하며, 인정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구룡사 회주 정우스님, 불교TV 회장 성우스님, 행불선원장 월호스님, 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김영종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장, 안동일 동산불교대학 명예이사장, 안홍준 국회의원 등 티베트의 평화를 기원하는 불자 7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공식행사로 발전했다. 그리고 올해 7월 7일 78번째 생신을 맞이하는 달라이라마를 위해 장수기원법회가 다시 세종홀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법회는 티베트 전통 의식으로 티베트어로 ‘땐슉’이라고 한다. 스승의 탄신을 기뻐하고 공양을 올려 진리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지속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이나 일반적으로 치러지는 종교행사는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개인을 위한 장수 기원 법회만큼은 역겨운 장삿속이라는 뉘앙스의 글을 달라이라마와 20년을 함께한 유일한 한국인 제자 청전 스님이 2011년 벽두에 기고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2010년 달라이라마 존자께서도 더는 어떤 땐슉 행사도 거부한다고 밝힌 것은 통쾌한 선언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2011년부터 오히려 대규모 행사로 발전된 우리나라의 땐슉은 달라이라마 존자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란 말인가? 참다운 수행자인 제14대 달라이라마의 탄생은 우리 불자로서도 정말 커다란 홍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슬슬 우리나라 불자들도 달라이라마의 불교적 성취와 티베트 망명정부 등 몇몇 이해관계자의 장삿속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달라이라마가 정치적인 은퇴를 하면서까지 영원한 종교지도자로 남은 의미를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리야말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그리고 세계불교의 지도자의 한 분으로서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앞당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올해는 달라이라마의 땐슉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법회가 아닌 남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법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