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복지위원장인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사회보장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아동보육의 경우 현 정부가 정책을 주도하기보다는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무상보육을 핵심적 공약으로 제안하자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정책적 방향과 구체적 재원마련 방안의 수립 없이 짧은 기간에 5세 미만에 대한 무상보육정책을 시행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이어 “아동보육에 대한 가정의 선택권을 고려하지 않고 보육시설에 자녀들을 보내는 경우에만 보육비의 일부를 경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상보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개선이 있었지만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OECD국가들과 비교하여 매우 높은 편이고 ▼급성질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중증질환이나 만성질환에 대한 가족의 부담은 매우 높아 가족의 구성원이 중병에 걸릴 경우 의료비 때문에 가족의 빈곤화가 초래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지역이기는 하지만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의료법인의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고 조목조목 문제를 거론했다.
허 교수는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의 경우에는 앞으로 새 정부에서는 정부재정지원의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그리고 공공부조와의 연계성을 구축해 부실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신봉,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점증하는 빈곤계층에 대한 정책과 제도 개선에는 매우 인색해 서민들의 삶은 과거에 비하여 나아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경실련에서 각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업무를 총괄했고, 수년 전부터 각종 토론회에서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박 당선인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 면제를 강조했는데, 문재인 후보의 본인부담금 상한제와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었다. 박 당선인이 제안한 노인기초연금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해 일정금액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재원마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실제로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야당이 제안한 예산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국민연금과의 연계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노인기초연금 공약은 문재인 후보가 제안한 현행 소득수준 70%이하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급여를 두 배로 증액하자는 제안보다 더욱 진보적인 성향의 정책 제안이었다. 노후소득보장의 다층체계의 구축의 측면에서는 박 당선인이 제안한 노인기초연금의 제도화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고려해 보아야 할 정책과제이다. 여당에서는 사회보장보다는 경제성장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박 당선인의 일자리정책은 공약의 방향성과 구체성이 미흡하고 보수적 이념과 공약의 관련성도 부족했다. 문 후보의 일자리정책이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계와 노동계의 현안문제들을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제안한 복지 관련 대선공약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의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대한 공약 내용은 어떻게 보는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13년 후인 2026년에는 65세 이상인 노인인구가 1000만명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이러한 급격한 고령화로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진국 경제수준에서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유일한 국가가 될 전망이다. 박 당선인은 저출산고령사회대책본부의 역할을 강화하기 보다는 보건복지부가 중점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령화 문제에 대한 독립적인 행정부서를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배치해 집중적으로 고령사회정책을 운영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일괄적으로 담당한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고령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보장이 없어도 노동은 이루어질 수 있지만, 노동이 없으면 사회보장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일자리 대책도 사회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박 당선자의 일자리정책 공약은 어떻게 보는가.
“박 당선인의 일자리정책을 살펴보면 노동계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명확한 정책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재정지원으로 이뤄지는 사회적일자리 사업의 하나인 ‘노인 일자리사업’의 사회공헌형, 시장진입형, 시장자립형 사업을 매년 확대해 연간 22만개 이상의 노인일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현 정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사업의 수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시간근로제형태의 사회봉사활동 및 급여 받는 직종의 개발과 도입에 대한 공약은 자칫 공공성, 자발성, 무보상성의 성격을 갖고 있는 자원봉사활동을 크게 훼손할 수도 있어서 공약의 개혁성과 적실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베이비부머세대 및 노인들을 위한 노동시장 내에서의 좋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공약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 새 정부에서는 청년, 여성, 장애인, 소수자, 노인 및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취업욕구들을 체계적으로 반영해 다양한 인생주기별 노동 욕구와 특성에 부합하는 질 높은 일자리 창출과 배치에 새 정부의 역량을 투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완벽하게 돼 있다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이번 유럽 재정위기 사태 속에서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견고하게 사회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복지 확대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선전됐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어떠한 국가도 투명한 조세정책과 합리적인 사회보장체계의 운영 없이는 결코 국민들에게 경제개발의 성장분이나 이익의 공평한 분배는 자연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국가목표로 설정한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15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 이후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 문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흡한 사회보장체계로 인해 실업, 질병, 산재, 퇴직 등의 사회적 위험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도 부실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및 사회 관련 통계지수들은 경제력에 비해 항상 OECD국가들 중에서 항상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용의 90%가 창출되는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고용을 동반하지 않는 산업의 활황은 수출이 증가하더라도 고용창출 효과가 매우 적어 국가의 경제적 부의 증가에 상관없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선진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은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을 동시에 추구했고 국가경제력 향상보다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국력을 집중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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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10호(1월8일~1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