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은 왜 이렇게 높을까’ ‘문은 또 왜 이렇게 낮고 마당, 토방, 마루, 툇마루 간의 높이에 차이를 둔 이유는 뭘까’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유난히 작거나 유연하거나 혹은 불편에 둔감해서일까?’
전통 한옥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으레 갖는 의문이다. 건축이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적절한 높이, 거리, 방향, 행동 강제 장치, 시각적 통제 장치를 확보하거나 규모, 장식을 달리함으로써 영역 간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조선시대 양반집은 길들이기의 전형이다. 신분 질서를 몸으로 익히도록 만들어졌다. 하인이 거주하는 행랑채 마당에서 양반의 공간인 사랑채를 바라보면 하인의 시선은 사랑채 누마루에 닿게 된다. 자연 지세나 인위적 방법으로 영역 간 높이차를 구현한 까닭이다. 하인이 고개를 들지 않는 이상 하인은 주인의 발 정도만 볼 수 있다. 주인은 하인의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공권력이 정점에 이르는 영역인 궁궐은 길들임의 건축적 장치가 총망라됐다. 특히 경복궁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남쪽 광화문으로 빠져나가는 금천(禁川)의 기능이 흥미롭다. 천을 건너기 전과 건넌 후의 영역이 다르다. 명백한 지위 구분이 이뤄진다. 금천이 경계로 가르고 있는 것은 왕의 공간과 신하들의 공간이다. 세자와 왕의 공간 사이에는 금천 같은 것이 없다. 금천으로 지위 고하를 구분한 장치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길들이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은 건축의 내부에 사람들을 교묘히 길들이려는 정치·사회학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건축은 오랜 세월 권력과 사회 지배 이념의 하녀로서 기능해왔다. ‘길들임’과 ‘길들여짐’이라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양반집에서부터 궁궐과 도성, 현대 도시와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와 분석을 바탕으로 건축의 실체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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