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는 지난 8일 영남대 인문관 1층에 고인의 흉상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엔 이효수 총장과 이정희 문과대학장, 노태현 영우회장, 여응모(美 Boeing사), 박명덕(한국인삼공사 歐美사업부), 이상감(청도 풍각중), 박영호(대구컨벤션뷰로) 등 제자와 지인 5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10주기인 내년 7월을 앞두고 제자들이 지난 3월 맥타가트박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하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2500만 원으로 흉상을 세운 것.
생전에 2년간 함께 숙식을 한 적 있다는 최병만 영주 대영중 교사는 이날 흉상제막식에서 “발령지로 떠나는 날 교수님께서 제게 노란봉투를 건네시며 첫 월급 받을 때까지 방도 구하고 식비에도 보태라고 하셨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하며 “평생의 스승으로 맘속에 모시면서 그 뜻에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인문관 1층 로비에 설립된 흉상은 인자했던 생전의 고인 모습 그대로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교육자’로 잘 알려진 고인은 1953년 미 국무성 재무관으로 주한미대사관에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76년 미 국무부에서 퇴직한 후 곧바로 영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1997년 퇴임 때까지 200여명의 제자들에게 2억6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월 30만원 안팎의 최소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과 연금 등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장학금에 보태기 위해 소장했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파는 등 제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놓은 그였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인색했다.
곰팡이가 난 식빵을 털어서 먹고, 버스비도 아끼기 위해 먼 거리도 걸어가기를 마다 않았고, 개인시간을 쪼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등 검소하고 청렴한 삶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1997년 영남대를 퇴임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3년 7월 별세하기까지 그의 한국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신라와 가야,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 380여점과 백자, 청자, 분청사기 등 미국으로 반출됐던 총 482점의 문화재를 되찾아 200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영구 기증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문화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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