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부인 강청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

기사등록 2012/12/07 07:41:00 최종수정 2016/12/28 01:40:04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장칭의 재판은 일정 부분 마오쩌둥에 대한 재판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마오의 실수를 모두 4인방에게 돌리는 편리한 해결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장칭은 자신의 행동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해결 방법의 허점을 폭로했다. 장칭의 발언으로 4인방이 아니라 5인방이 존재했다는 이론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마오쩌둥(1893~1976) 사후 1980년 11월20일 시작된 장칭(1914~1991)을 비롯한 4인방의 재판은 당시 중국 정치 지도부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재판이다. 1978년 최고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1940~1997)에게 이 재판은 사적으로는 문화혁명 당시 고초를 겪은 사람들을 위한 복수였고, 공적으로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재판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장칭이었다. 그녀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재판부의 기대와 달리 장칭은 자신이 마오쩌둥과 당의 노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후 진술에서 장칭은 "나는 마오쩌둥의 개였다! 그가 물라면 물었다"고 고함쳤다. 장칭은 재판 내내 피고가 아니라 재판의 지휘자처럼 행동했다.

 어둠 속에 봉인된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을 치명적인 매력과 결함을 동시에 지닌 특별한 인격의 소유자로 되살려낸 책이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이다. 산둥성 시골 마을에서 상하이, 옌안, 베이징으로 이어진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문화혁명, 마오의 죽음, 덩샤오핑의 집권에 이르는 20세기 중국사의 결정적 지점들이 펼쳐진다.

 장칭은 마오의 부인이자 가장 충직한 비서로서 혁명과 전쟁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 겪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마오가 위기에 놓인 순간 장칭은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 정치의 최전선에 등장했다. 국가주석 류샤오치(1898~1969)를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하는 데 앞장섰고, '비림비공운동'으로 저우언라이(1898~1976) 총리를 공격했으며 마오의 후계자로 떠오른 덩샤오핑을 '파시스트, 매국노'라고 비난했다.

 비범한 의지력을 지닌 한 정치적 인간의 초상이다. 장칭은 자신의 자아가 최고의 가치였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나약함을 증오했으며 누구도 감히 자신을 심판하도록 두지 않았다. 타고난 여성적 매력과 배우 출신으로 무대 위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 힘의 균형을 가늠하고 조정하는 정치적 능력, 끈질긴 복수심, 정적을 제거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자비함 등이 더해져 중국 공산주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냉혹한 여성 정치가 장칭이 탄생했다.

 4인방 재판에서 장칭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83년 종신형으로 감형됏다. 1991년 5월14일 77세의 나이에 목을 매 자살하기까지 그녀는 줄곧 교도소와 병원을 오가는 감금 상태에 있었다. 자살하기 며칠 전 장칭은 "마오 주석, 당신의 제자이자 전우였던 제가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로스 테릴 지음, 양현수 옮김, 3만2000원,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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