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어디로 가야하지?" …지하철역사 길 찾기 너무 어려워

기사등록 2012/06/11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00:47:37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하루에 640여만명이 이용하는 시민의 발 수도권 지하철. 아마 지하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으면 적잖은 불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마운 지하철도에도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특히 지하공간에서 행선지 찾기는 가히 난수표를 해독 하는 심정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1~9호선 지하철 역사와 환승 통로를 따라 붙어있는 안내표지판은 젊은 시민도 가끔 헷갈릴 정도니 나이든 노인이나 외국인에게는 적잖은 불편을 안겨준다.

실제로 외국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도 복잡하고 난해한 표기로 가득찬 안내표지판을 볼 때면 울화가 치밀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노인들은 길 찾기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9일 오후 1호선 회기역에서 중앙선을 타려던 한국계 미국인 존 강(69)은 중앙선과 1호선이 나뉘는 지점에서 지도와 안내표지판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 여행차 왔다는 그는 "안내표지판과 지도에 표시된 노선의 색깔이 달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내표지판에 '중앙선'과 '1호선'이 표기돼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내표지판에 지상 공간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아 겪는 불편도 적지 않다.

  여행 차 딸과 함께 한국은 찾은 마리아 안또넨(여·50·핀란드)은 "이동할 때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는데 안내표지판을 따라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목적지와 가까운 출구가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어 밖으로 나온 뒤 다시 찾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서울 지하철 불편은 최근 한 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최근 서울시정연구개발원에서 발표한 정책리포트 '지하철역에서 길 찾기'에 따르면 2009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서울 관광 시 불편한 점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내표지'가 불편하다고 응답한 외국인 관광객은 23.3%로 조사돼 불편 조사 3위를 차지했다.

물론 외국인은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이 같은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 만난 시민 박창식씨(42·자영업·서울 구로구)는 "서울 토박이도 가끔 지하철 안내표지판만 믿고 길을 찾다가 행선지를 찾지 못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다"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나 외국인들이 (행선지를 차지 못해) 이리 저리 헤매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4호선 명동역에서 하차한 문모(44· 여· 주부)씨는 종합안내도 앞에 서서 자신의 목적지를 찾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문씨는 "지도에 표시된 건물이 많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검색하고 있다"며 "안내표지판이 헷갈릴 경우 아예 스마트폰을 활용해 길 찾기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한 해 동안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에 접수된 길찾기 관련 민원은 104건. 민원이 주로 발생하는 곳은 승강장과 출입구, 환승 통로와 대합실 등이었다. 이중 출구안내에 관한 민원이 30건, 방향안내에 관한 민원이 29건을 차지했다.

 서울 도시철도에 따르면 5~8호선 역사마다 평균 35개의 방향유도표지판과 9개의 종합안내도가 각층과 환승 통로를 따라 부착돼 있다. 하지만 안내표지판 부착에 대한 기준이 통일돼 있지 않아 승객들에게 혼란을 주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내표지판이 있음에도 지하철 환승 통로와 출입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통합매뉴얼의 부재를 꼽았다. 세부사항에 대한 통합기준이 없다 보니 상황에 따라 안내표지판을 붙이게 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하철 1~9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 서울메트로9호선㈜을 비롯해 코레일까지 내부매뉴얼을 기준으로 안내표지판을 부착하고 있다.  

 여혜진 건축도시공간 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준과 계획 없이 안내표지판을 부착하다 보니 규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운영기관은 내부 매뉴얼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철도 관계자는 "환승역의 경우 개통 전에 합동점검을 통해 안내표지판의 형태와 수량 부착위치 등을 결정한다"며 "개통 후에도 상호 유기적으로 협조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조와 시설물 등에 맞춰 적정 수량이 설치됐으나 승객의 민원에 따라 보조 안내표지판이 추가로 설치되다 보니 규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여 연구위원은 일본의 사례를 들며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안내표지판의 위치를 설정하는 기준을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며 "동선이 나뉘는 지점에는 배치기준 등을 마련해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승강장과 대합실의 출구번호판을 리모델링하는 방안과 선형으로 동선을 유도하는 안내표지를 바닥면을 활용해 부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은희 도시연대처장은 "환승 노선이 증가하면서 안내표지판이 많이 늘었지만 공간 자체가 복잡하다보니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신만철 도시철도팀장은 "1999년도에 통합규정이 마련됐지만 승객 민원을 들어주다 보니 오히려 불편을 초래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개혁단'을 운영해 7월쯤에 개선안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혜진 건축도시공간 연구소 연구위원은 "시민개혁단을 운영해 문제점을 진단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안내표지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초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jiki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