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왜 조기졸업 높나 했더니…부실교육 부추기는 교과부
기사등록 2012/06/01 05:00:00
최종수정 2016/12/28 00:45:11
【서울=뉴시스】류난영 기자 = A 과학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B군은 교내 영어 경시대회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해 2010년 조기졸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B군은 같은 해 명문대학교인 C대학에 '졸업예정자' 자격으로 '수시모집'에 응시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물론 B군이 C대학에 입학하려면 A 과학고의 졸업증명서가 있어야 했다.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에 관한규정'에 따라 B군이 '조기졸업'이 가능하려면 3학년 교과과정의 '이수인정평가'에 응시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A 과학고는 대학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B군에게 3학년 과정이 아닌 매우 익숙한 1학년 교과과정을 토대로 '이수인정평가'를 보도록 했고 B군은 손쉽게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B군은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후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를 해야 했다.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워 따라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A 과학고의 이같은 행위는 불법이다. 이 규정에는 상급학교 조기입학을 위한 자격 부여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기 졸업은 가능하지만 조기 입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B군과 같은 조기졸업 학생의 대학 조기입학이 비교적 수월해 질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가 상급학교 조기입학을 위한 자격 부여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다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대통령령인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등에 관한 규정'을 입법예고해 상급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1999년 마련된 '초·중등 교육법' 제27조제3항에는 상급학교 조기입학을 위한 자격 부여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상위 개념인 대통령령에는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대상자 선정에 관한 규정만 있고 이 같은 규정은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고들이 하위 개념인 '초·중등 교육법'을 근거로 학생들을 조기졸업을 시켜 대학에 입학시키는 등 대학진학에 악용해 왔다.
이같은 과학고들의 조기졸업은 불법으로 감사원의 지적까지 받았다. 하지만 교과부의 입법예고가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고교들이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조기졸업 시켜 대학진학에 악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조항인 '상급학교 조기입학자격 부여'에 따르면 학교장은 교과목의 학업성취도가 우수하고 특수 분야의 재능이 탁월한 학생에게 상급학교 조기입학자격을 부여하고 상급학교 조기입학자격을 얻은 학생에 대해 교과목별 이수인정평가를 면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상급학교 조기입학에 따른 학생선정 시기, 기준 및 방법 등은 상급학교 조기입학자격인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정하도록 했다.
이 같은 개정안은 학업성취도가 우수하거나 특수 분야 재능이 탁월하다는 명확한 기준이나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학교장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학생들을 조기졸업 시킬 수 있게 돼 과학고의 조기졸업 악용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원의 몇 퍼센트까지 조기졸업이 가능하다는 문구 마저 없으며 상급학교 입학 여부를 정하는 '상급학교 조기입학자격인정위원회의'도 학교장이 정한다는 점에서 객관성은 더 떨어진다.
쉬운 문제를 내 조기진급 시켜 문제가 됐던 '조기이수인정평가'에 대한 어떤 제재 장치도 따로 마련된 기준이 없다.
문제는 이같은 일이 대부분의 과학고에 만연해 있어 대학진학에 합법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감사원이 지난해 8개 과학고의 조기졸업 운영 실태를 감사한 결과 조기졸업 대상자 선정부터 교과목별 조기이수인정평가 실시까지 조기졸업제 전반의 학사관리 부실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과학고는 창의적 과학인재 양성을 위한 특목고로 일반계고와 달리 1~2학년에는 국민공통 기본교과 등을 이수하고 3학년에는 심화학습 단계인 수학·과학계열 전문교과를 편성·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최근 3년간 2학년 재학생의 80.4%인 3442명의 학생이 조기졸업해 실제로는 대부분의 과학고 학생들이 3학년 전문교과과정을 듣지 않은 채 대학에 진학했다.
일부 과학고는 징계를 받지 않은 학생이라면 모두 선정하거나 내신 성적이 미달한 경우 품행이 방정하다고 담임 추천을 받도록 하는 등 객관적 기준에 미달된 학생까지 전원 대상자로 선정했다.
2004년까지는 KAIST의 경우에만 조기에 진학할 수 있었으나 2006년부터 서울대 등 다른 대학도 졸업 예정자의 자격으로 수시전형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3년 48%로 과반에 못 미치던 과학고의 조기졸업률은 2005년을 기점으로 59%로 크게 증가, 2006년 68%, 2007년 70%, 2008년 76%, 2009년 90%, 2010년 79%로 증가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과과정을 이수하지 못해 대학 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자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감사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 서울대 등 49개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은 3493명의 과학고 학생들의 진학여부를 확인한 결과 74명의 학생이 대학에 등록하지 않았고 39명의 학생이 1년 안에 자퇴하거나 제적되는 등 대학에 제대로 진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 관계자는 "일부 과학고에서 조기졸업제도를 운영하면서 대학 입학을 허가받은 학생들을 조기이수인정평가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조기졸업시켜 문제가 되고 있다"며 "법령이 개정되면 조기진급한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에 오히려 합법적으로 과학고들이 대학진학율을 높이는 데 악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상급학교 입학 규정이 마련되면 학교 현장에서는 법을 위반하지 않고 조기진급해 상급학교 입학자격을 부여 받고 대학진학을 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것"이라며 "다만 각 시도교육청 담당자가 모여서 조기진급에 관한 메뉴얼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교과부는 오는 7월9일까지 각계 단체 의견 수렴을 통해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등에 관한 규정'을 확정한 후 이르면 8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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