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구렁이는 영물이라고 했다. 제주도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실화 한 편을 소개한다.
얼마 전 49세의 여인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구렁이 형상을 한 부부와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부인의 사연을 들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어린 시절 제주도에서 어느 큰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마루 밑에서 엄청나게 큰 구렁이 2마리와 새끼 구렁이 5마리가 떼를 지어 나와 온 마당을 돌아다녔다.
가족들은 혼비백산했고 흉가로 이사를 잘못 왔다는 생각에 모두 두려워했다. 그날 이후 구렁이들은 매일 아침 기어 나와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때로는 식사할 때 갑자기 지붕에서 밥상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그녀의 부친은 구렁이들이 살고 있는 구멍에 농약을 뿌렸다.
그런데 약을 뿌리고 나서 부친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무엇인가 자신의 다리를 친친 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 그후 부친은 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 없었으며 입까지 막혀 불구자로 평생을 살다가 죽었다.
이웃 주민들에게 그 집에 대한 내력을 물어 보니 원래 초가이던 집터에 살던 가난한 부부와 다섯 자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청산가리를 마시고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그 여인의 꿈에 밤마다 7마리의 구렁이들이 나타나 이곳은 내 집이니 빨리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꾼 날은 반드시 흉한 일이나 사고가 일어났다. 그녀는 몸속으로 구렁이들이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그동안 너무 무서워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나는 필시 구렁이로 변한 가족들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해 혼령을 위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랬더니 그후로 부인의 증세가 씻은 듯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억겁의 윤회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게 인과응보에 의해 탄생한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동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을 깨뜨리는 업보가 아닐 수 없다. 요즘 경제적 고통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계속> 물처럼 출판사
자비정사 주지 02-395-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