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시가 있는 그림-김재학, 서정적 미감과 감각적 묘사로 구상화 편견을 깨다

기사등록 2012/02/27 13:24:30 최종수정 2016/12/28 00:16:59
【서울=뉴시스】화가 김재학.
【서울=뉴시스】

-슬픔의 장미-

장미 한 송이를 가슴에 꽂고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미 한 송이 가슴에 담고
슬픔에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가시에 찔린 사랑
그래도 그 사랑을 안고 가지만
지나간 발자국 뒤로
진홍의 피 같은 꽃잎 하나 떨어진다.

장미의 본색은 사랑이 아니다.
【서울=뉴시스】김재학 작 ‘소리-징·130×130㎝·Oil on Canvas’.
끝없이 속 살을 태우고 마는
번뇌의 불이다.
영혼을 관통하는 번갯불이다.

장미의 울음은 믿지 말을 것,
홀연히 꿈처럼 사라지는 것이니
한 송이 장미를 두려워 할 것,
사랑이 갈 때 비로소 알리라.
가장 슬픈 꽃잎이 장미라는 것을.


 우리나라 많은 화가들 중에서 김재학만큼 장미를 잘 그리는 화가는 별로 없다. 물론 장미뿐이 아니라 들꽃, 풍경, 인물, 징 등 그의 조형대상은 무궁무진하다. 그래도 역시 그의 장미 그림은 단연 독보적이다.

 홍장미, 흑장미, 백장미, 황장미, 분홍장미 등 어떤 종류의 장미든 그는 신기라고 할만큼 참 잘 그린다. 사실적 묘사도 그렇거니와 배면 처리도 일품이고, 장미가 보여줄 수 있는 감성의 느낌과 서정의 전달감은 정점의 미감을 표현해낸다.

【서울=뉴시스】김재학 작 ‘장미·53×45㎝·Oil on Canvas’.
 웬만한 기량을 가진 화가는 대상을 잘 그릴 수 있다. 사실 또 그런 화가들이 우리나라엔 많다. 그러나 꽃이라는 단순 대상을 통하여 생명의 향취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일은 쉽지 않다. 김재학의 그림에선 그런 점들이 돋보인다. 생화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느낌, 지극히 자연스러운 구도, 유연한 배면 처리, 그것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만의 특장이다.

 일반적 정물의 고루함이 없는 것은 물론 신비한 섭리에 의해 창조된 듯한 절묘한 필력은 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홀린다. 그렇다. 정말 사람들을 홀리게 한다.

 대중들의 호응이 높은 그림이 비교적 깊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재학의 조형은 그 통념을 뛰어넘는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격조를 확고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 색, 면, 그것을 절묘하게 조화해낸 구성의 작품을 수작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그 범주에 속한다.

 마치 수채처럼 촉촉히 살아있는 효과, 품격 높은 문인화 같은 향취, 배면의 음영효과,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외양은 물론 내성의 아름다움까지 함께 느끼게 한다. 거기에 시심을 이끌어내는 은은한 서정성이 완성도 이상의 그 무언가를 표현해내고 있다.

 그 표현성은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느끼고 음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태는 구상이되 그것은 다만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진정한 함의는 그 내면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 속의 또 다른 아름다움, 서정 속의 더 깊은 서정, 인생과 사상의 의미까지도 떠올리게 하는 정취가 화면에 녹아 있다.

 이 시대 구상미술은 침체기에 빠져있다. 사실 묘사라는 진부한 습성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진예술이 미술의 한 축을 차지하면서 단순한 구상회화는 빛을 잃었다. 그렇다면 활로는 무엇인가. 사실 묘사 이외의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아내야 한다. 김재학의 작업이 바로 그 점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 있다.

 서정적 미감과 정밀한 묘사력을 보여주면서 감각적인 구성의 묘가 구상회화의 진부함을 불식해낸 것이다. 한 눈에 읽히지 않는 대상, 무언가 자꾸 음미하게 하는 느낌, 가슴에 정취를 일으키는 어떤 힘, 화면 전체에서 풍기는 신선한 방향(芳香), 그렇게 그는 새로운 구상회화의 극점을 보여주고 있다.

 근래 그는 ‘징’이라는 대상에 몰두해 있다. 원심의 소리가 울리는 듯한 징을 통하여 그는 새로운 언어들을 전하려고 한다. 그렇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극한의 미학을 추구하는 장인이다. 그러기에 그는 오늘 한국미술에서 자기 세계를 뚜렷이 확립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류석우 시인(미술시대 주간)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66호(3월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