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데뷔 패티김, 항상 '최초'를 달고 다녔다

기사등록 2012/02/15 18:52:11 최종수정 2016/12/28 00:13:48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가수 데뷔 54년 만에 은퇴를 선언한 가수 패티 김(74·김혜자)은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디바다.

 1960년 광복 이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초청한 한국 가수로 NHK에 출연했다.1962년에는 한국 가요계 최초로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로 공연, 성공했다.

 1963년 미국으로 진출, NBC '자니 카슨의 투나잇쇼'에 출연했다. 1966년에는 한국 첫 창작 뮤지컬로 통하는 '살짝이 옵서예'의 주연을 맡았다. 1967년 국내 처음으로 개인 이름을 내세운 방송프로그램 '패티김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1978년 대중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1989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과 2000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 역시 국내 대중가수로는 처음 밟은 것이었다.

 15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패티김이 1961년 10월23일 국군방송 프로그램 '위문열차'에 출연했을 당시의 육성이 공개됐다. 이 방송에서 일본 활약상에 대한 소개가 나오자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53)씨는 패티김를 한류가수 1호라 칭하기도 했다.

 패티김은 1958년 8월 만 스무살의 나이로 미8군 무대에서 데뷔했다. 당시 '린다 김'이라는 이름으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잘 알려진 가수 이해연과 듀엣무대에서 첫 곡으로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85)의 노래 '테네시 월츠'를 불렀다.

 이듬해 그녀가 좋아하던 패티의 이름을 따 패티김이라는 이름으로 나섰다. 첫 무대에서 '틸, 파드레'를 부르면서 패티김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37-22-38인치의 몸매와 168㎝의 늘씬한 키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군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후 50년이 넘도록 줄곧 현역으로 활약하며 '서울의 찬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초우'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사랑은 영원히' '사랑은 생명을 남기고'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최근까지 라이브로 공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8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과 2012년 전국 13개 도시를 도는 투어 '패션'(passion)를 치르며 시들지 않는 가창력을 뽐냈다.

 지난해에는 미국 방문 중 로스앤젤레스 인근 실마르 플라이파크에서 행글라이딩에 도전, 비행에 성공했다. 해발 3500피트(1066m) 상공을 날았다. 앞서 번지점프에 성공하기도 했던 그녀는 행글라이딩에 성공한 뒤 다음에는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패티김은 6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출발로 1년 간 국내외를 도는 월드 투어 '이별'을 끝으로 가수 생활을 접는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