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나라, 일본 3국이 총력전을 벌인 임진왜란은 동북아 질서를 뒤흔든 근세 최대의 국제전이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일어난 내분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새 정권이 들어섰고, 명나라 역시 과도한 원정 비용 탓에 재정 문란을 겪으며 50여년 뒤 멸망하고 만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민간인을 포함한 조선 측 사망자는 18만에서 최대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66%의 경작지가 파괴되면서 굶주린 조선 백성들은 '인육을 먹으며 연명하는' 비극을 겪는다.
소장 일본학자인 김시덕(37)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가 쓴 '그들이 본 임진왜란'은 일본인이 기록한 임진왜란의 기억을 다룬 책이다.
기존의 임진왜란 관련서가 우리 역사가들의 해석과 평가에 기초했던 데 반해 일본 근세의 야사와 외전, 군담소설 등을 통해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드러난 전쟁의 모습을 그린다.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김 교수는 특히 일본 에도시대 200여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등의 전기물과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같은 군담과 역사 소설에 주목했다. 이들 대중적 읽을거리를 통해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지, '보고 싶어 한 전쟁의 이미지'는 무엇이었는지를 소개한다.
임진왜란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에서 나온 임진왜란 관련 문헌들이 '조선 침략'을 '정벌'이라고 한결같이 옹호하는 반면, 외국에 의한 일본 '정벌'은 부당한 침략으로 서술한다는 사실도 밝힌다. 예컨대, 하야시 라잔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보'에서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의 개전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강조한다.
"예부터 중화는 우리나라를 여러 번 침략했으나 우리나라가 외국을 정벌한 일은 진구코고(신공황후)가 서쪽 삼한(三韓)을 정벌한 이래 천 년 동안 없었다." (18쪽)
요컨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발한 임진왜란은 중국이 부당하게 일으킨 침략에 대한 자기 방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전쟁이 불의에 대한 정당한 전쟁임을 주장한다.
일본인들이 남긴 임진왜란의 문헌은 전쟁에 종군했던 이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양조평양록' '무비지' 등의 명나라 역사서나 조선의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 '서애선생문집' 등의 사서 또한 적극 인용한다.
김 교수는 이순신이 일본에서 '영웅'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류성룡의 '징비록'이 일본으로 유입된 18세기 초 이후라는 것을 알린다. '징비록'이 그간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씌어졌던 일본의 전기물과 군담소설 경향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음덕기'에 실려 있는 '고려말에 대하여'를 통해 당시 일본군의 언어 정책을 들여다보고 일본 문헌에 남은 우리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사냥' 일화를 비롯, '도요토미 히데요시 독살설' 등 국내에는 잘 전해지지 않은 임진왜란 관련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김 교수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17~19세기의 일본인들이 이야기해온 임진왜란을 전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줄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나 이것이 일본인들이 300년 이상 이야기해왔음은 물론, 일본의 스펙트럼을 통해 동북아시아 역사를 이해해온 서구학자들이 지닌 임진왜란의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우리 독자들이 임진왜란에 대한 한국의 관점 말고도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 전쟁으로부터 다각적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자 했다." 240쪽, 1만5000원,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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