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뿐 아니라 일반아이들까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

기사등록 2011/08/13 06:00:00 최종수정 2016/12/27 22:35:46
【서울=뉴시스】배민욱 기자 = 함모(27)씨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콩닥콩닥 뛴다. 몇해 전이었다. 그는 막내 동생의 밀린 생활통지표를 정리하던 중 특정 문구가 자신의 눈으로 들어왔다.

 함씨 막내 동생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평가글 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나이에 맞지 않게 입이 거칠어서 문제입니다." 집 안에서는 한없이 평범한 어린 학생으로만 생각되던 막내 동생이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함씨는 "집에서는 욕 한번 하지 않는 동생이 학교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사는 주부 피모(40)씨 얼마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4살짜리 아들의 뜬금없는 말 한마디 때문이다.

 집안에서 놀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화를 내며 "XXX 자를 거야"라는 말을 했다. 피씨는 한동안 자신이 들은 말이 아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아들의 욕은 계속됐다. 결국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아들의 욕설은 멈췄다. 이 과정에서 피씨 부부의 힘든 노력과 시간들은 나름 애처롭다.

 피씨는 말한다. "지금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니까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중고생들은 욕을 사용하지 않으면 대화가 지속될 수 없을 정도다. 초등학생은 물론 어린이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욕쟁이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속칭 '문제아'라 불리는 몇몇 아이들만의 전유물로만 생각됐던 것이 사실이다. 자신을 과시하거나 친구에게 겁주려고 욕을 사용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고 있다. 초중고생들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어린이들도 점점 욕이 일상화되고 있다. 언어습관이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들의 욕설문화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만큼은 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부모 앞에서는 욕을 하지 않아도 또래 친구들끼리는 서로 욕을 쓰며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생활에서의 욕설사용실태 및 순화대책' 연구용역보고서에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10월 한달간 서울·전남·충남 초중고교생 126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이 처음으로 욕설을 사용한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58.2%)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22.1%) 순이었다. 모두 80.3%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욕을 배운 것이다.

 하루 종일 욕을 사용하는 초등학생도 65.5%에 달했다.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41.1%) 욕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욕을 하는 대상은 친구가 가장 높았다. 욕설을 하는 이유로는 '남들이 사용하니까'라고 응답한 학생이 29.6%였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 및 건전화 방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설을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욕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청소년은 단 5.4%에 불과했다.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은 사실 새롭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최근 욕을 사용하는 청소년의 영역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그 정도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욕설 사용은 65.5%로 중학생(77.5%)이나 고등학생(77.7%)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위험 수위를 훌쩍 넘은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욕을 할 때도 거리낌 없고 들을 때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특히 또래집단이 형성되는 초등학교 생활은 아이들의 욕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계기가 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모(10)군은 얼마 전 처음으로 욕이란 걸 알게 됐다. 이군의 친구가 왕따를 괴롭히다 XXX란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부터다.

 이군은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같이 있던 친구가 기분 나쁜 욕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전까지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군은 어느 순간 자신도 자연스럽게 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XXX란 말은 물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행동도 자주한다.

 친구들이 같이 욕을 하자고 해서 이군도 호기심에 한 번 시작하게 됐다. 여전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른다.

 "친구들과 어울릴 땐 자연스럽게 욕이 나와요. 이제는 가끔씩 기분이 나쁘면 머릿속에 XXX란 단어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떠올라요"라고 이군은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A양도 욕쟁이 어린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A양과 친구들은 학교에서 씨X, 존X 등의 욕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4학년 때는 남자아이들이 주로 많이 사용했는데 5학년으로 올라가니까 여자도 욕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고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남여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욕을 섞어가면서 대화를 한다는 의미다.

 A양은 "말할 때마다 욕을 하는 친구가 있고 화날때만 욕을 하는 친구가 있다"며 "말할 때마다 욕을 하는 친구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욕쟁이 아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사회적 관계형성의 수단으로 욕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욕을 함으로써 친구들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물론 평소 자신에 대한 다른 반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정례 아동심리발달놀이연구소 나무야 나무야 심리운동치료사는 "아이들은 관찰과 모방을 통해 학습을 하게 된다"며 "우연히 욕을 따라했을 때 상대가 평소와 다르게 반응하거나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욕은 놀이기능에서 친교기능으로 전환된다"며 "사회적 관계형성을 위해 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본인이 속한 그룹에 적응하고 쉽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욕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문용린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아이들의 언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보다 또래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아이들은 본인이 속한 그룹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한 애가 욕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욕은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표현방식"이라며 "언어표현에 서툰 아이들이 가장 쉽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 또한 욕"이라고 전했다.

 아이들 스스로가 문제의식이 있어야 욕설문화를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양명희 연구책임자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욕설 사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기 점검을 통해 스스로 언어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대책이 세워진다고 해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욕을 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욕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연세대학교 신의진 소아정신과 교수는 "욕을 많이 하는 아이가 있는 경우 공격성을 조절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욕을 줄이는 방법"이라며 "욕을 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욕을 하는 것이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전반적인 스트레스, 경쟁에 대한 강요 등이 아이들을 더 욕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mkba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