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귀신 잡는 해병대가 왜 이 지경 됐나

기사등록 2011/07/18 10:52:53 최종수정 2016/12/27 22:28:34
【성남=뉴시스】강종민 기자 = 5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해병대 총기난사 사망 장병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ppkjm@newsis.com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지난 4일 오전 인천 강화군 해병2사단 8연대 소속 해안소초. 고요하던 이곳이 느닷없이 총성과 장병들의 비명소리로 뒤덮였다.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김모(19) 상병은 정모(20) 이병과 공모해 부대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김 상병은 수류탄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 사건으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했다. 김 상병도 얼굴 부위를 다쳤다.

 총기사건이 있기 하루 전인 3일에는 같은 사단 소속 김모(23) 이병이 외박을 나왔다가 계단 난간에서 목에 끈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이병은 부대 내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세상을 등진 것으로 추정된다.

 며칠 뒤 10일 밤에는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소속 정모(19)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일병은 가슴에 구타로 생긴 상처가 있었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모두가 불과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해병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해병대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 당시 허술한 대응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더니 이번엔 군내 악습으로 인한 잇단 사건사고로 질타를 받고 있다.

 ◇軍 스스로가 멍들게 하고 있다

 이번 일들을 계기로 해병대를 비롯한 군대의 반인권적 가혹행위 실상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총기사건을 일으킨 장병과 희생 장병,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장병들 모두 빗나간 병영문화의 희생자들이다.

 사실 군대 내 부조리와 구타 및 가혹행위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귀신 잡는 해병’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을 내세우며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해병대는 상황이 더 하다.

 총기사건 발생 하루 전 숨진 김 이병도 선임병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이병의 선임병은 성추행과 같은 모욕적인 옷벗기기 게임을 강요하고, 돈도 주지 않고 PX에서 담배와 간식을 사오라고 시키는 등 갈취행위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해당부대는 자살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가리기보다 유족들에게 김 이병이 가정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자살동기 자체를 은폐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렇듯 군은 악습과 부조리 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단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왔고, 병영 내 구태는 계속적으로 반복됐다.

 국방부 감사관실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3월까지 해병대 2개 사단 장병 943명이 고막 파열, 늑골 골절, 정강이 타박상 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증상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의심해 볼 수 있는 것들로 해병대 내부에서 폭력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후임병이 폭행 사실을 상부로 보고했다는 이유로 보복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지휘관들은 이 같은 폭력행위를 축소·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국방부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해 8월 해병 제1사단 소속 모대대에서는 A상병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B이병을 주먹과 발로 30~40차례 때려 전치5주의 부상을 입혔다. 하지만 대대장은 상부에 알리지 않았고, 담당 중대장은 B이병에게 사건을 축소해 진술하도록 지시했다.

 지난해 말 모연대에서는 C일병이 ‘선임기수를 못 외운다’는 이유로 D이병의 얼굴과 가슴 등을 마구 때렸지만, 중대장은 D이병에게 사건을 은폐·축소하도록 회유했다.

 이 같은 삐뚤어진 관행이 군 스스로를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악습 끊기 매번 실패…이번에도 못하면 끝장

 군 당국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군 내부에 잔존해 있는 악습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이 마련한 대책은 이미 과거에 내놓은 것들을 되풀이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총기사건이 발생하고 나흘 뒤 경기 평택 해병대사령부에서는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을 비롯한 주요 간부 120여 명이 긴급 지휘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해병대 지휘부는 “해병대에 퍼져 있는 악·폐습을 뿌리 뽑겠다”고 다짐하고,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병영문화 혁신 100일 작전’에 돌입했다.  

 상습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하는 병사에 대해서는 ‘3진 아웃제’를 적용해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분류, 병영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 인권전문가를 초청해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군법 교육도 시행할 방침이다. 또 인성 결함자는 입영을 차단하고, 해병대원 전원에게 구타 및 가혹행위 척결 서약서를 작성토록 했다.

 병영문화 혁신 대책은 전군으로 확대됐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전군에 병영 부조리 실태 조사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군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병영 내 구타 및 가혹행위 등 악습을 완전히 도려내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군은 지난 2005년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경계소초(GP) 내무반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지금까지 대대적인 병영문화 개선 운동을 벌여왔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이런 악습들이 병영 전반에 걸쳐 개선됐지만 여전히 말끔히 제거됐다고는 볼 수 없다.

 더욱이 군은 1987년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 2009년 자살사고 예방, 지난해 언어폭력 근절 등 각종 병영문화 혁신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잇단 사건사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병영문화 개선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 등 서방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국방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가 전화를 걸 경우 옴부즈만은 언제든 해당 부대를 방문 조사할 수 있다. 독일 의회는 옴부즈만에게 부대 내 군사 기밀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고 있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현재 인권위나 권익위는 군의 허가를 받아야만 군대 내 가혹행위를 조사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처럼 가혹행위가 고질적으로 반복된다면 외부감시기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군대는 구타 등 강압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는 일부 군 지휘관들의 그릇된 사고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군 관계자는 “잘못된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병영 내 악습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지휘관들의 강한 의지 없이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지휘관들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ohjt@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36호(7월2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