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의 영상 르포르타주] ‘아! 나의 조국’ 사진기자, 마도(魔都)서울 탈출하다

기사등록 2011/06/27 13:49:51 최종수정 2016/12/27 22:22:43
【영월=뉴시스】고명진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 귀촌 후 직접 재배, 수확한 배추 포기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영월미디어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기자 49년차 안병찬의 영상 르포르타주-귀촌한 장년(壯年)>

강원도 영월희망농업대학이 제3기 농촌관광반 개강식을 가진 것은 지난 4월6일이다. 이 학교는 영월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고 박선규 영월군수가 학장을 맡고 있다.

이 시대의 사진기자 고명진은 니콘 디-3 카메라를 포함해 무게 18㎏이  나가는 장비 가방을 둘러메고 개강식에 갔다. 그의 현 직함은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다.

◇환갑의 나이에 농대생 변신

이번 학기 수강자는 44명으로 전원 장학생이다. 그 가운데 40명이 귀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최연소자는 31세, 최연장자는 64세, 평균연령은 50세를 넘었다. 영월 농촌에서는 50대까지 청년으로 보고 환갑이 돼도 중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입학생은 모두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는 장년세대인 셈이다.

【영월=뉴시스】고명진(오른쪽)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 영월희망농업대학 3기 동급생들과 맑은 계곡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영월미디어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개강식이 끝난 다음 입학생들은 호선하여 금년이 환갑인 고명진 관장을 학생장으로 뽑았다. 그는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겨서 주어진 학생장 자리를 선선히 떠맡았다고 한다.

희망농업대학 강의 과목은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농촌관광 개발을 주제로 한다. 강의 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네 시간이다. 11월 23일까지 8개월 동안 24주차를 진행한다.

지난 6월2일은 고명진 환갑날이었다. 관상목 소나무 재배농인 김헌식 부학생장 집에서 ‘번개모임’으로 잔치가 벌어졌다. 고명진과 김영숙(57) 부부는 딸이 가져온 기념 케이크를 막 자르려다가 모임에 초대받았다. 20여 명의 동기들은 고명진 부부를 둘러싸고 “생신 축하합니다”를 합창했다.

◇마도(魔都)를 떠나

【영월=뉴시스】고명진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 1987년 6월26일 한국일보 사진기자 시절 부산 문현동 로터리에서 찍은 특종사진. 2년 뒤 미국 AP통신사의 ‘금세기 100대 사진’에 선정됐다. (사진=영월미디어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고명진은 유명한 보도사진 ‘아! 나의 조국’을 찍은, 타고 난 사진기자다. 이 사진은 1987년 6월26일 한국일보 기자로 부산 문현동 로터리에서 잡은 특종이다. 2년 뒤 미국 AP통신사는 ‘아! 나의 조국’을 ‘금세기 100대 사진’으로 선정했다.

그는 민영통신 뉴시스의 편집상무 겸 사진영상국장으로 현장을 부지런히 뛰면서 귀촌의 꿈을 점점 키워왔다.

그는 이미 11년 전에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별한 전 부인이 강원도 장평에 들어가 요양할 때였다. 그는 공기가 나쁜 서울을 병마의 거대도시라고 여겼다.

어디 병마뿐이랴. 서울은 과밀하고 각박하고 살벌하다. 정치는 죽어가고 경제는 빈익빈이고 문화는 천박하고 사회는 타락하는 곳이 서울이다. 결국 그는 ‘인생 2모작의 길’을 고민하는 가운데 마도 서울을 탈출하여 귀촌의 삶을 열겠다고 결심을 다졌다.

【영월=뉴시스】고명진(앞줄 왼쪽)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 환갑 축하 모임에서 영월희망농업대학 3기 동급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 관장 왼쪽은 부인 김영숙씨.                       (사진=영월미디어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영월은 ‘귀촌1번지'라는 대형 간판을 크게 내건 고장이다. 마침내 고명진과 김영숙 부부는 지난 2월28일 거주지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연신내에서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광전리 271번지 여촌분교로 옮겼다.

◇영월군 한반도면 주민이 되다

고명진 부부는 폐교한 여촌분교 안 18평짜리 옛 교장관사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 이제 고명진은 부인을 ‘영월댁’이라고 즐겨 부른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해피’를 데리고 박물관으로 바뀔 여촌분교 건물과 운동장을 산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해피는 얼마 전에 마을 반장이 키우라고 나눠준 발바리종이다. 그는 군청의 지원 아래 영월미디어박물관을 연다는 당초 계획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영월=뉴시스】고명진 영월미디어박물관장이 배추 재배를 위해 밭에서 비닐 덮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영월미디어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고명진 부부가 귀촌해서 맨 처음으로 한 일은 배추심기였다. 4월22일에 골을 내고 비닐덮기 작업을 하고 이틀 후에 배추모종을 했다. 광전2리 1반 반장이 열심히 도와주었다. 실하게 여문 자연농 배추 120포기를 생산한 것은 5월 말이다.

4개월째 접어든 귀촌생활. 그는 지난 3년간 언론인권센터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눔과 베품’의 마음을 배우게 되고 그 뜻을 영월 농촌과 미디어박물관 속에 녹이겠다고 한다.

◇"5년만 더 빨리 내려올 걸"

영월군은 지난 5월24일부터 4일간 '영월연세포럼'을 열었다. 국내외 학자 140명이 모인 관내 최대 학술행사였다. 홍보위원장을 맡은 고명진은 대회가 열린 4일 동안 ‘사진뉴스레터(photo news lette)’를 발행했다. 엡슨 출력기 한 대를 주문해서 촬영하랴 편집하랴 인쇄하랴 1인 다역으로 힘든 작업을 해냈다. 내친김에 7월부터는 월간 마을신문을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고명진은 뉴시스 이사 겸 편집위원의 끈을 놓지 못해서 여전히 현역 사진기자로 농촌소식을 올리고 있다.

그는 6월23일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5년만 더 빨리 결정할 걸 그랬습니다”하고 아쉬움을 표했다.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