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닌스님이 풍랑으로 출항의 꿈을 접고 2년간이나 신라명신께 기도를 올리고나서야 출항 할 수 있었던 그 시절과 달리 요즈음은 비행기나 다를 바 없는 쾌속정을 타고 내달리는 뱃길이니 그 옛날 목숨을 걸고 구법여행을 했던 청익승의 애환을 느끼기는 애시당초 너무 먼 상황이다.
필자가 처음 일본으로 갔을 때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잊을 수가 없다. 여행을 앞두고 누구나 그렇듯 여권과 비자를 챙겨서 야무지게 넣어 두었다. 그 바람에 오히려 여권 둔 곳을 기억해 내지 못해 분실·재발급 신청을 했다가 몇일 뒤 숨겨둔 여권을 되찾는 바람에 재발급 신고를 취소했다.
드디어 일본으로 떠나는 날,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티켓팅을 하는데 이게 왠일인가? 나의 여권이 분실신고된 것이란다. 부랴부랴 시청직원께 전화를 하여 ‘전산착오’였다는 연락이 왔지만 비행기는 이미 떠나고 말았다.
나의 짐을 싣고 공중을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뒷 꽁무니를 바라보며 멍해 있는 사이에 비상 연락이 돼 일본 외무성 직원이 달려왔다. 다음 비행기에 빈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그것을 타고 가면 마중 나와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이 탑승한 비행기, 좌석 번호를 찾아 가니 특실이라. 이런 것을 두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던가? 내 형편이라면 할인티켓에 가장 저렴한 것을 고르고 골라야 하거늘 이게 왠 팔자에 없는 호강이람! 넓고도 푹신한 VIP석의 안락함도 잠시뿐, 일면식도 없는 외무성 직원을 어떻게 만나지? 또다시 걱정이 밀려왔다.
앞서 간 비행기가 내 가방을 이미 싣고 갔으니 짐을 찾을 필요도 없이 홀가분하게 검색대를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저만치 핸섬한 어떤 신사가 내 이름이 적힌 하얀 막대를 들고 서 있었다. 수호신이 나타났구나. 와우~ 후다닥 달려가서 “Thank you. I'm Sohee Yoon. Sorry…”로 시작해서 한참을 영어로 뭐라 뭐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남자가 아무 반응이 없다. “또 뭐가 잘못된 것이지?”하고 당황하자 그 직원이 뭐라고 대답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뭐라지? 그러고 가만 생각해 보니 음 “저 영어 못합니다”라고 하는 한국말이었다. 외국에서 한국말을 들으면 마치 프랑스 말 같기도 하고, 하여간 우리말이 외국어 같이 들린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어에 능통한 외교 직원이었으니 얼마나 웃겼던 첫 대면인가? 앞서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그가 내민 정성 가득한 도시락. 그 모양새가 삼각형이었다. 김밥이 어떻게 삼각형이야? 당시에 그렇게도 신기했던 삼각 김밥이 지금은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동경 시내로 접어들어 다다른 곳은 가부키 공연장. 일행들은 이미 시내 구경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 버린 뒤라 예약된 자리를 살금살금 찾아가니 무대 위에는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배우들의 연극이 한창이었다. 간단한 회화야 몇 마디 할 수 있지만 고어체가 넘쳐나는 가부키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배우들이 입은 의상만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 흐름에 맞추어 전환되는 무대가 입체적이면서도 정교하기 이를데 없기도 하지만 무대 양편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반주음악이며 악기들의 신호에 따라 갖가지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무엇보다 화려하고도 기품있는 기모노 의상이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옷자락을 타고 흐르는 선이며 옷태가 한국의 한복에 비하면 직선적이고 중후한 느낌이라 그 절제되고 반듯한 엄숙함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꽂꽂이 세우게 되던 순간들, 옷자락이며 어깨와 허리에 새겨진 문양에 선명하고도 깔끔한 빛깔이 옷이라기 보다는 예술작품이라 해야 할 정도라 일본의 직조와 염색술에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재미난 것은 중간 휴식시간이었다. 공연 장 안에는 기념품점이며 다양한 메뉴를 갖춘 레스토랑이 휴식을 취하는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도시락을 사들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어 가부키 극장이 예전에는 사교의 공간이었다는 것에 실감이 갔다.
막간에 통역사에게 지나간 장면들에 대해 물어보니 복잡하고도 긴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라 대충 들어서는 그 줄거리를 꿸 수 없을 판이었다. 그렇지만 극을 표현하는 음악과 무용이 있기에 대충은 내용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으며, 극의 진행도 다분히 시각적인 장치가 많아 지루하지가 않았다. 어쨌든 일본 전통의 춤·노래·기악 그리고 연극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통 예술을 고루 느끼기에는 그 보다 나은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날 동경의 여러 예술인들을 만나 식사를 했는데 그들에게 전날 보았던 가부키 공연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는 그렇게 비싼 공연 못 봐요”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보았던 가부키공연 티켓은 웬만한 월급쟁이가 일주일 꼬박 일해야 할 만큼 고액이었고 일본 전통을 느끼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큰맘 먹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동경 시내에 상설극장이 있을 만큼 성행하는 가부키공연은 중국의 경극과 마찬가지로 근대의 신흥 상인들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그 만큼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풍부한 가부키(歌舞伎)이 이므로 외국인들은 흔히 ‘일본 문화의 진수’라고까지 격찬하기도 한다.
가부키를 감상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러한 격찬에는 가부키가 지닌 길고도 깊은 역사적 배경이 한 몫을 한다. 사무라이 귀족들이 즐기던 노(能)와 오키나와의 인형극인 분라쿠(文楽)라는 유구한 강물이 흘러 들어와 가부키라는 바다를 형성하였으니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풀어 보기로 한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