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겸비한 세기의 여우다. 61년 '버터필드 8'의 매춘부 역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로 6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또 탔다.
96년 20세 연하의 여덟번째 남편 래리 포텐스키와 생애 마지막 이혼 이후에도 테일러는 데이트를 즐겼다. 옛 남자친구인 멕시코 변호사 빅터 루나(81)와 다시 만나고 있다는 얘기도 7년 전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늙어지면 못 노나니'에는 예외가 없었다. 엉덩이와 등이 몹시 아픈 테일러는 에이즈 행사장에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한 테일러의 노환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중첩된 결과다. 57년 맹장수술, 62년 자살기도와 약물 과다복용, 68년 기관지 절개술과 자궁 적출술을 당한 몸이다. 알코올 중독은 83, 88년 그녀를 베티포드센터에 입원시켰다. 여기에 당뇨병, 비만, 폭식증까지 노화를 거들었다.
팬들은 그녀가 클레오파트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63년 주연 영화 '클레오파트라' 이후 굳어진 별명이다. 163㎝, 36C-21-36인치 시절이다.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인 청춘의 광채를 발산하던 리즈 테일러는 더 이상 없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라진 자리에는 '에이즈 퇴치운동의 잔다크'가 있었다.
91년 자신의 이름을 건 에이즈재단을 설립한 테일러는 에이즈 퇴치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두문불출 하다가도 에이즈 연구기금 모금 행사에는 병든 노구를 드러냈다. "연기는, 요즘의 내게,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게 진짜다."
테일러는 5년 전부터 주변을 정리해왔다. 사후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경매에 부치기로 경매업체 크리스티와 합의했다. 보석, 미술품, 의상, 가구, 그리고 추억과 사연이 깃든 온갖 기념품들이다. 테일러는 12년 전부터 크리스티 측에 경매물건을 내놓았다.
196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드레스는 99년 경매에서 15만 달러에 팔렸다. 낙찰금은 전액 미국에이즈연구재단에 전달됐다. 2002년에도 크리스티는 테일러의 보석 9점을 경매, 엘리자베스테일러 에이즈재단에 기부했다. 개중에는 리처드 버튼(1925~1984)의 첫 선물인 다이아몬드 에머랄드 반지도 들어 있다. 버튼은 테일러의 5, 6번째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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