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용왕의 아들로 알려진 ‘처용’이 외출에서 돌아와 자신의 아내와 역신이 간통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처용은 분노하지 않고 크게 웃더니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동경 밝은 달에 밤 새워 놀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두 다리는 아내이고, 또 둘은 누구인가? 원래 내 아내이지만 뺏겼으니 어찌할꼬.”
노래를 들은 역신은 처용 앞에 꿇어 앉아 사죄하면서 “앞으로 당신의 형상을 그린 모습만 봐도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이후 신라인들은 집집마다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대문에 붙였다.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는 처용 설화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처용이 아랍인일 것이라는 가설이다. 또 처용무로 볼 때 (연)예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처용의 초상을 집에 붙인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붙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9세기 신라를 사로잡은 아랍 출신 스타의 맥이 21세기 한국 연예계도 휘어잡고 있다. 물론 실제 아랍인이 아닌 한국인이긴 하다.
‘아랍 샛별’은 이필립(30)이다. SBS TV 주말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는 김주원(현빈)이 액션스쿨 무술감독 임종석(이필립)을 두고 “아랍인”이라고 놀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이필립은 짙은 눈썹, 큰 눈, 높고 큰 코 등 또렷한 이목구비와 까무잡잡한 피부가 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가 아랍인과 흡사하다. 이미 MBC TV ‘태왕사신기’ 출연 당시부터 ‘아랍인’으로 시청자들 사이에 회자됐다. 일각에서는 이필립의 헤어스타일을 거론하며 “예수님 분위기 난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 유대인과 아랍인은 조상이 같다.
‘아랍인’ 원조는 신현준(43)이다. 매부리코로 대표되는 뚜렷한 외모로 데뷔 초부터 아랍인 분위기를 풍겼다. 영화 ‘가문의 위기’ 시절 함께 출연한 배우 공형진(42)이 신현준을 두고 “아랍인”이라고 애드리브를 한 뒤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후 CF에 아예 아랍인 차림으로 출연했고, 지난해 8월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오늘을 즐겨라’에서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의 힘을 뺀 채 아랍 노숙자 연기를 감행했다. 3일 SBS TV ‘밤이면 밤마다’에서 공개된 베레모를 쓴 신현준의 중학교 때 사진은 ‘아랍 용병’이라는 감상평을얻었다. 그는 부친의 사업 관계로 어린 시절 요르단에서 살아 아랍어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아랍과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다.
또 한 사람 ‘아랍인’ 스타로 분류되는 얼굴이 장동건(39)이다. 과거 아랍권 고위인사가 방한했을 때 어느장관은 친근감을 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아랍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후손이 배우 장동건”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랍인 후손이 돼버렸다. 장동건의 외모가 이국적이기는 하지만 신현준, 이필립과 차이가 있다 보니 아랍인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여전히 오가고 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페르시아 왕자다. 사우디, UAE, 이라크 등이 포함된 아랍과 이란(페르시아)가 옆 동네에 살지만 민족이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한 평가다.
전문가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은 “장동건의 본관인 덕수 장씨는 아랍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위구르계로 600년 전 고려에 정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며 “덕수 장씨 중에 장동건처럼 동서양의 장점을 고루 갖춘 미남형의 사람들이 많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또 “혼혈이 아닌데도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한국인의 경우 수천년 전부터 유입돼 온 각 혈통의 유전 형질이 면면히 이어지면서 발현된 것”이라며 “눈썹이 짙은 아버지와 눈썹이 옅은 어머니가 결혼해서 낳은 자녀의 눈썹이 중간 형태가 되지 않고 짙거나 옅은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유전 형질 발현의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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