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콘돔회사<55회>
하류는 머리도 식힐 겸 청양제비 형만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외출을 위해 양복을 입고 있는 하류에게 청양제비가 눈을 흘겼다.
“야아, 지금 장군의 아들 영화 찍다가 왔냐? 양복 꼬라지가 그게 뭐냐? 너 꼭 부여 촌닭 티내고 살래?”
부여를 떠나기 전 날 아버지 하곰달이 마련해 준 신사복이었다. 부여 양복점에 진열해 놓았던 양복은 제법 좋은 원단에 디자인도 심플했다.
“난 마음에 든다.”
“요즘 따블은 사라지는 추세야. 그건 과거로 흐르고 있다고…젊은 놈이 뭐야? 당장 바꿔 입어. 우선 내 것으로 입고 그건 벗어 던져!”
“아버지 정성이 있는데… 그래도….”
“워메, 고향 떠버리더니 너 효자 됐다. 부여에서는 지지리도 속 썩이던 놈이. 그럼 건너편 세탁소에 개조해 달라고 해. 그 양반 솜씨가 좋아서 어떤 옷이든 우라까이 하는 데는 도가 텄더라.”
양복 정장을 세탁소에 맡기고 청양제비를 따라서 강동의 미스 콘돔이란 이름의 사무실을 구경 갔다.
“정말 제비 놈 월급 대주며 오입시켜주는 회사다 이거지?”
“임마, 내가 제비지 공갈 사기꾼이냐?”
적당한 크기의 사무 공간에서 제품 설명과 직원 교육이 병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참석 인원은 형만과 하류를 비롯한 10여 명이었고, 교육 강사로 50대의 훌렁 까진 대머리의 대표가 직접 나섰다.
“바로 이겁니다! 우리 콘돔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이겁니다. 통상의 콘돔 두께인 0.02보다도 훨씬 얇은 0.015에 도전 했으면서도… 꼬집어도 찢어지지 않고, 압력에도 터지지 않는 고신축! 고탄력!”
그랬다. 콘돔회사가 청양제비 형만의 직장이었다. 제비들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신이 내린 직장이다.
“신의 소재인 특수 실리콘인 애플 다이어리 개발에 우리는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콘돔의 소재뿐만 아니라 이번에 개발된 RX콘돔에는 컬러 테크닉이 가미돼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만들어서 파워가 넘쳐 보이도록 했습니다. 바다색 칼라콘돔에는 신선함을 느끼고, 빨간색 콘돔에는 정열을! 바로 이것이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 라는 우리 애플존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사장의 열변에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하류도 대머리 까진 사장의 열정에 손뼉을 쳐주었다. 대머리 사장이 그 중 검은색 콘돔을 앞자리의 어느 여직원에게 불쑥 내밀었다.
“강 팀장, 이 검은색 콘돔 어때요? 여자 입장에서 힘이 연상되지 않나요?”
강 팀장이라 불려진 여직원은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단발머리에 스카프를 착용한 균형 잡힌 몸매의 세련된 아가씨였다. 그녀는 이미 단련된 모양으로 쑥스러워 하지 않고 콘돔을 이리저리 주물거리기까지 했다.
“글쎄요…청색과 붉은 색은 몰라도…사장님, 저는 핑크색이 제일 맘에 들어요. 검은 계통은 왠지 검둥이를…그래서 고객들이 불결하게 느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장이 펄쩍 뛰었다.
“검둥이라니요? 불결…? 강팀장의 사고가 꼬져서 그래요. 그러니까 시집을 못 가는 거야! 세계육상 100미터 정상들이 모두 흑인이에요! 그들의 스피드, 그들의 근육! 파워는 단연 세계 최곱니다. 우사인 볼트, 파웰, 칼 루이스 등 그뿐이야? 세기의 정력가로 떠오른 골프천재 타이거 우즈, 역사상 첫 대통령 오바마…검둥이라니!”
강 팀장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하는 표정을 지으며 단상으로 나갔다.
“알겠습니다. 취소에요…사장님! 검은색 한 번 밀어보죠! 그보다 우리 RX팀의 야광 콘돔입니다. 아직 시판 전이지만 파격적 아이템으로 개발된 것이죠.”
강 팀장은 소형 상자에서 푸르스름한 형태의 콘돔을 꺼내 놓았다.
‘별 해괴한 짓을 다하고 있군’ 하고 맨 뒤에 옵저버로 참석해 있는 하류는 실소를 머금었다. 콘돔회사의 신제품 마케팅은 치열했다. 청양제비가 호기심을 보였다.
“칵, 죽입니다요. 어두운 밤에 번쩍거리면 호기심 많은 여자들이 뻑 갈 거고!”
“그리고 이것도 한 번 봐 주시죠.”
마케팅 강팀장이 새로운 제품을 꺼내 놓았다. 청양제비가 나가서 손으로 들어 올리면서 자세히 관찰했다.
“윽, 이건 꼭지에 정액 받이가 없네요?”
“맞습니다. 섹스 중에 성감을 올리기 위해서 꼭지에 있는 물받이를 없앴어요.”
다른 동료 직원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정액이 줄줄 새고, 난리가 아닐 텐데요…그건 어떻게 해결합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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