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물 <1> "굉장한 암컷이 왔슴다!"

기사등록 2010/11/17 19:41:30 최종수정 2017/01/11 12:49:57
【서울=뉴시스】원작 박인권·글 유운하

 대물(大物)이라 함은 구만리 비상하는 장자(莊子)의 붕새(鵬鳥)처럼 하류가 꿈꾸는 상상(想像)의 조화(造花)다.

 -프롤로그-

 부여의 백마강에는 슬픈 전설이 잠들어 있다. 부소산 산자락의 후미진 그늘 아래 마치 거대한 남근(男根)을 연상케 하는 외로운 대물바위 하나가 천년의 전설을 간직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면 숨죽여 우엉우엉 울어댄다.

 그때마다 소년도 바위를 끌어안고 함께 흐느꼈다. 울다가 지치면 이제 맑아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물결처럼 흘러가며 용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자동차와 건물을 지어 놓았다.  

 소년은 때때로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손끝으로 그려 보기도 하였다. 놀랍게도 백마강의 하늘에는 소년이 원했던 형상이 구름으로 두둥실 나타나기도 했다.

 “엄…마!”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모습에 소년은 가슴이 벅차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소가 신비로운 여인이 마치 승천하는 선녀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구름형상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소년은 대물바위에서 발을 동동 굴렸다.

 그러나 구름은 변화했고, 눈 앞에서 자꾸만 흩어졌다.

 목화송이처럼 하얗게 날리는 구름이 백마강 위로 고스란히 내려앉고 있을 때, 소년은 문득 소녀를 보게 되었다.  

 소녀는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에 블랙 레이스가 돋보이는 챙 모자를 쓰고 백마강을 가로 지르는 선박 위에 있었다. 그 아이는 배의 난간에서 매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음산한 계곡의 모퉁이에 버티고 있는 대물바위를 발견했고, 그 위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이끼와 잡초에 뒤덥혀 있는 대물바위의 흉흉함과 뜻하지 않은 소년의 반짝이는 까만 눈빛이 충분히 놀랄 일이건만 소녀는 침착했다.  

 어린 소녀는 전혀 동요 없이 동승하고 있던 중년 신사가 내미는 조그마한 항아리에서 유골가루를 꺼내 강물에 뿌렸다. 그 행위는 너무 자연스러웠고 동시에 신성하기까지 했다.

 “엄마….”

 “안녕!”

 소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백마강의 물결을 타고 산기슭을 굽이굽이 돌아서 대물바위에 울려 퍼졌다. 소년은 숨을 멈췄다. 엄마의 분신과도 같은 목화송이 구름 한 점이 소녀의 머리 위에 머물렀고, 동시에 소녀의 배 난간아래 일렁였다.  

 소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에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소년과 소녀의 눈빛이 다시 교차했다.
그들은 동시에 서로의 눈동자에서 그리운 형상을 보게 되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년소녀들의 심장은 섬전(閃電)의 관통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실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의 극치였다.

 수 백, 수 천 번의 만남보다도 단 한 번의 주고받은 시선이 이처럼 간절할 수 있을까. 우주만물의 창조가 신비한 것은 생김생김과 그 효용의 감동 때문이라면 이들은 태고(太古)의 감동을 각기 느꼈다.  

 그러나 소녀를 태운 배는 대물바위 아래로 빠르게 흘러갔다.  

 이해하기 어려운 체험은 천년을 침묵한 바위처럼 소년과 소녀에게 깊이 각인(刻印) 되었다. 문제는 그 후부터 발생했다. 대물바위에서 그때의 소녀를 떠올릴 때마다 소년은 참을 수 없는 야릇한 황홀감에 빠져들며 옷을 하나하나 벗어 던졌다.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대물바위를 미쳐 기어 다녔다.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만월이 휘영청 떠오른 겨울밤에도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소년의 성장과 비례하여 남자의 상징물도 점차 거대하게 변해갔다. 그것은 마치 대물바위의 형상으로 위압적이고 경이롭게 치솟아 올랐다.  

 “우우!”  

 소년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손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손에서 소녀의 얼굴이 조각되어 나왔다. 고고한 눈썹과 오뚝한 콧날에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유연한 목덜미는 눈이 부셨고 봉긋한 가슴에 출렁이는 유방은 신이 빚은 솜씨였다. 소년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자 대물 바위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소년은 차마 더 이상 소녀의 몸을 그릴 수는 없었다.  

 이제 소년은 자신의 물건을 대물바위에 정성들여 갈기 시작했다. 하나의 섬세하고 단단한 칼날이 드러나고 있었다. 제비의 칼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을 무렵에 소녀는 꿈을 꾸고 있었고, 그녀 역시 칼을 다듬었다.  

 소녀의 칼은 가장 빛나는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신검(神劍)이었다. 하늘과 땅을 상서롭게 하기 위한 칼을 제련하는 소녀, 그리고 제비의 칼을 제련하는 소년은 점차 대물바위와 동화(同化)되어 갔다.


 ◇제1화 나는야 여성봉사단(제비) <1회>  

 그의 이름은 하류. 나이는 25살이고 직업은 여성봉사단(일명 제비)이다. 하류는 자신의 직업에 무한한 애착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인류의 존재에 있어 가장 위대한 것은 어머니고, 그 어머니는 여자이며, 그 여자를 위해 젖 빨던 힘까지 헌신하는 행위를 어찌 숭고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인생은 여자를 위한, 여자의 의한, 여자의 봉사’  

 오늘도 하류는 자신의 전부를 바치기 위한 20분간의 행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섹스의 최적 타임 20분은 한식경이라고 한다. 적어도 밥 한 끼 먹을 시간만큼만 땀을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망스럽게 서둘러 허겁지겁 하게 되면 체하게 되고, 그렇다고 터무니없게 시간을 소비해도 기가 탕진되어 영양가가 없다.

 숙달된 제비는 이 규칙을 절대 위반하지 않는다. 늦어도, 그렇다고 초과해도 안 된다. 우주를 품어 생명을 잉태하는 러닝 타임은 정확히 20분이다. 그 시간이면 충분히 상대 여자를 질펀한 요녀로 둔갑시킬 수 있다.  

 숨넘어가는 비명과 자지러지는 교태로 하류를 뱀처럼 꽁꽁 휘감아도 그는 더 이상 오버하지 않는다.
그건 적어도 제비라면 언제든 두 탕, 세 탕을 뛸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섹스는 나를 위한 만족이 아니라 상대 여인에 대한 배려이다. 여자는 자빠지기 위해 태어났고, 자빠뜨린 여자에게는 반드시 만족을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비 철학이다.  

 그는 이 만족의 배려를 아름다운 사랑의 배려라고 이름 짓고 싶어 한다. 오늘도 긴급한 사쿠라의 메시지를 받고 만족의 배려를 위해 하류가 출동했다.

 “존경하는 형님, 납시었습니까?”

 사쿠라가 듬직한 체구를 납작 엎드렸다. 100㎏이 넘는 육중한 몸매였지만 잔대가리 굴리는 게 일품이어서, 순 토종 한국인이면서도 사쿠라란 별명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었다.

 “어이 벚꽃아, 왕벚꽃아  누가 오셨냐?”

 사쿠라는 우리나라 말로 벚꽃을 뜻한다. 봄이면 지천으로 일제히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 버리는 섬뜩함을 내포하고 있는 일본 벚꽃을 그러나 하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쿠라가 귓속말로 속닥였다.

 “굉장한 암컷이 왔슴다!”

 사쿠라의 표현은 주로 지지배, 학생, 숙녀, 사모님, 가시나, 버진, 쭉쟁이, 아줌씨 등이었는데 암컷이라고 했을 때는 심상치 않은 상대를 의미한다. 더구나 굉장한이라면? 기대감이 충만되었다.  

 “굿~탕이다!”  

 하류는 호기롭게 휘 바람을 날리면서 하나비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록 모양새는 변두리 삼류카페지만 그런대로 아늑하고 운치 있는 술집으로 하류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홍실이냐 청실이냐?”  

 이곳을 여성봉사 작업아지트로 삼은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집과의 거리가 적당하고 또 유흥가와도 다소 떨어져 있어 단속을 피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둘째는 룸살롱에 버금가는 아늑한 밀실이 두 개나 있었고, 술값이나 이용대금이 비싸지 않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이 장소에서 제비작업을 모의하면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제비 명당이었다. 

 “너니? 부여의 왕제비가?”

 분홍 커튼이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홍실에서 요염한 암컷이 허물을 벗고 잔뜩 흥분되어 하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대로 낮판대기는 빤지르 하네. 체구도 봐줄만 하고. 물론 물건은 담가봐야 알겠지만 좋아. 인정해. 그런대로 삐까하다.”

 암컷은 이국적인 눈매로 하류의 일신을 순식간에 훑고 있었다.

 ‘그래. 담가봐야 알겠지만 좋아 죽을 거다!’

 하류는 내심 자신만만해하며 암컷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기왕이면 바지위로 불끈 솟아있는 그놈을 주시하도록 자랑스럽게 힘을 주며 걷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떠냐? 침 넘어가지. 미치게 담그고 싶을 거다 낄낄!’

 그러나 암컷의 반응은 예외였다.

 “니 직업이 곰탕집 시다라고 했니? 맞아?”

 이건 뭐야? 완전히 김밥 옆구리 터지는 분위기 아닌가. 곰탕 시다라니? 너 호구조사 하러 왔냐?

 “근데 곰탕집 시다가 뭐요? 쪽팔리게. 기왕이면 고전 요식업 CEO라고 해주슈.”  

 “CEO라고? 후훗, 재미있구나. 네가 말하는 고전 요식업이 설마 여자 요리는 아니겠지? 여자 요리의 전문 경영인이라? 역시 기대가 되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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