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지난 2001년 8월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에 넘어간 현대건설(사진)이 매각 공고를 시작으로 9년만에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대장정에 오른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24일 매각공고를 내 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 3887만9000주(34.88%)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2조6826억5100만원이다.
입찰참가의향서(LOI)는 다음달 1일 오후 3시까지 받기로 했으며, 본입찰은 11월12일 오후 3시까지 실시키로 했다. 이후 연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인수의향을 밝힌 곳은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아직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밝힐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M&A 업계에서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적통성을 주장하는 현대그룹과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차의 맞대결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외형상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두 그룹의 인수전 참여에 채권단도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몸값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3자 매각 가능성을 언급하며 부채질에 여념이 없다. 채권단은 인수 가격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경영능력도 주요 항목으로 살필 계획이다.
◇포문 연 현대그룹 “왕 회장 적통은 우리”
인수전의 포문은 현대그룹에서 먼저 열었다. 추석 연휴인 지난 21일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라는 내용의 TV 광고를 내보내 현대건설 인수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광고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부자가 건설 현장을 함께 살피는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이 광고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몽헌 전 회장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현대건설을 이어받았고, 유동성 위기에서 회사를 지키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추석 연휴 이후에도 광고를 계속 내보낼 예정이다.
더욱이 최근 법원이 현대그룹이 낸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며 신규여신 중단 등 채권단의 공동 제재도 풀리게 되어 현대건설 인수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범 현대가의 적자인 현대차그룹은 물밑작업을 벌이며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법률 자문사로 김앤장을, 재무자문사로 도이치증권과 맥쿼리증권을 선정하는 등 인수를 위한 실무작업을 벌이고 있어 조만간 공식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차그룹의 최대 강점은 현금성 자산만 4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현대중공업과 KCC 등 범 현대가가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측면지원하고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현대그룹의 강력한 인수 의지에도 현대차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이유도 유동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대부분의 M&A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가격이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내달 1일 현대건설 인수의향서를 내지만 정확한 인수 금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의향서 제출 시점에 자료를 내 인수관련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2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준공식에서 현대건설 인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잘 알고 있지만…”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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