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일본 미디어의 반응은 좋다. 동방신기까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빅뱅의 성공 이후부터는 일본 미디어도 한국 아이돌계에 부단한 관심을 가져왔다. 소녀시대가 이른바 ‘1등 여성 아이돌그룹’임을 일본 미디어도 안다. 산케이스포츠는 “개성 있는 캐릭터를 지닌 아홉 소녀가 모인 걸그룹으로, 남녀불문하고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지난해 발표한 ‘지(Gee)’는 한국 음악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한국 최고의 걸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오리콘 스타일도 “한국 음악 프로그램에서 신기록을 달성하며 걸그룹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보도자료만 나간 상황에서도 이 정도니, 막상 진출이 시작되는 8월 말께는 더 큰 반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물론, 미디어 반응이 대중 반응과 꼭 일치하리라는 법은 없다. 지금 한국 대중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과연 소녀시대가 일본 대중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다.
이에 대해 일찍부터 짚은 기사가 뉴스엔 6월11일자 ‘‘日진출’ 소녀시대가 AKB48보다 못하다?’다. 기사는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에 있어서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일본 걸그룹은 역시나 AKB48”라면서 “분명 일본 내 인지도에서 AKB48를 현재는 ‘이겨내기’ 힘들다.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소녀시대를 중심으로 한국 걸그룹들의 연이은 일본 진출에 반감을 표하기도 하고 있다. AKB48로 대변되는 일본 걸그룹 문화는 한국 아이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내 반감의 적지 않은 부분은 ‘한국’ 아이돌에 기인한다. 경제적으로 아직 자신들보다 못한 국가의 아이돌에 대한 막연한 ‘촌스러움’이 묻어있다. 실력이나 재능으로 기준을 삼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며 “하지만 그래도 소녀시대가 AKB48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겁을 먹을 이들은 소녀시대가 아닌 AKB48이다. AKB48의 안방으로 뛰어든 것도 소녀시대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을 석권한 것도 한국 아이돌이다. 막연한 선진국 예찬론은 적어도 지금은 벗어나도 될 때”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기사는 “일본 안방에 들어선 건 한국 아이돌이다. 시작부터 ‘쫄’ 필요도 없고 비관론에 빠질 이유도 없다. 보아와 동방신기가 힘들게 문을 연 일본 시장에 맹공을 퍼부은 건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한국 아이돌 문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일정부분 맞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문화 전파란 경제력 우위를 통한 층계식 문화전달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일본에서 그런 룰을 깨버리고 시장의 일부를 차지했다. 기사에서 언급했듯 보아나 동방신기 같은 예가 있고, 음악 외에도 TV드라마라는 콘텐츠가 더 있다. 말 그대로 ‘쫄’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좀 더 면밀하게 시장 수요를 분리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콘텐츠를 받아들여 메인스트림으로까지 끌어낸 주역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여기서 성(性) 구분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산(産) 콘텐츠나 연예인을 받아들인 건 전적으로 일본 ‘여성’이라 봐야하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에 제대로 첫 안착한 보아는 사실상 아무로 나미에의 대체로 여겨졌다. 가창력 있는 실력파 여성 댄스 뮤지션 자리의 대체다. 아무로 나미에의 하락과 보아의 상승 시점이 일치하고, 마찬가지로 아무로 나미에의 부활과 보아의 하락 시점이 일치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아무로 나미에의 절대지지층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여성층이었다. 보아 역시 남성층의 열렬한 지지를 통해 떴다기보다 소탈한 ‘옆집 소녀’ 이미지가 일본 여성층에 받아들여져 다수의 라이트팬층을 보유하게 됐다 봐야한다. 소속사 에이벡스의 가희(歌姬)라인이 으레 그렇듯 ‘여성층을 위한 여성 아이돌’ 개념이었다.
이후 ‘겨울연가’를 위시로 붐을 일으킨 한국 TV드라마의 팬베이스가 일본의 F2계층, 즉 35~50세 여성층이었음은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바 있다. 마찬가지로 동방신기 역시 일본 상륙 초기에는 이들 ‘한류 아줌마들’을 중심으로 터를 잡다 F1, 즉 20~34세 여성층으로 팬베이스가 확대됐다는 것이 정설이고, 최근 상륙에 성공한 빅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동방신기처럼 ‘한류 아줌마들’이 버팀목이 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F1 계층에 어필하고 있다. 그 외 한국 출신 가수 K 등도 ‘한류 아줌마들’ 베이스인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와 연예인은 ‘일본 여성’이라는 시장 베이스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남성층에 어필할 만한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린 경우는 거의 없다. ‘대장금’ 등 여타 TV드라마가 중장년 남성층에 어필했다는 분석 정도는 있어도, 특히 뮤지션의 경우는 전무하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해외 문화 흡수에 대한 일본 남녀 간 큰 차이 때문이다. 일본 여성은 확실히 해외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상당부분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해외 문물 자체에 폭넓은 포용력을 지니고 큰 관심을 보인다. 일본교통공사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대중문화상품 주 소비계층인 20대 일본 여성의 해외 출국률은 24.42%로 약 4명 중 1명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다른 환경에 가서 무엇인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퍼져있기에 여성층에 어필하는 해외 여성 뮤지션들, 예컨대 중국의 전통악기연주 그룹 여자십이악방(女子十二樂坊) 음반이 100만장씩 팔려나가고, 캐나다 출신 록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새 앨범을 낼 때마다 판매순위 1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남성층은 이와는 다르다. 위 일본교통공사 2009년 통계만 보더라도 20대 남성층의 출국률은 12.78%로 3년 연속 감소 추세이며,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예 외출보다는 ‘골방족’에 머무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 경제 불황 증후군으로 인해 해외 문화에 배타적인 태도가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으며,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기존 ‘경제 우위에 따른 층계식 문화 전달’만 허용하는 수준이다. 앞선 뉴스엔 기사에서 묘사된 “경제적으로 아직 자신들보다 못한 국가의 아이돌에 대한 막연한 ‘촌스러움’이 묻어있다”는 부분은 정확히 이 같은 일본 젊은 남성층의 시각과 일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소녀시대의 경우 보아나 동방신기, 빅뱅, 여타 한국 TV드라마들과 달리 여성층에 어필하기 어려운 콘셉트라는 데 있다. 소녀시대는 애초 모델 자체가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에 맞춰진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내한한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서브리더 니이가키 리사 역시 소녀시대 등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틀린 점보다는 오히려 닮은 점이 더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은 기본적으로 젊은 남성층의 취향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맞춰지고 있다.
한 마디로 소녀시대는, 최소한도, 아직까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및 연예인이 노려보지 못한 시장에 들어서게 된 셈이다. 보아나 동방신기의 성공 사례를 곧바로 뒤이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상당부분 해외 문화에 배타적인 계층을 대상으로 난전(亂戰)을 펼쳐야 할 입장이기도 하다. 일본 미디어의 관심과 별개로, 대단히 불리한 상황인 게 맞다.
그렇다면 소녀시대는 일본시장에서 결국은 ‘안 먹힐’ 운명인 걸까? 일종의 시장 착각에서 비롯된 허망한 일본 진출 시도에 불과한 걸까?
이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망성 자체는 충분히 있다. 일단 남성층 중심 전략을 상당부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서히 여성층 공략으로 전반적 전략을 재편하면 훨씬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여성층 공략 전략’이라는 건 대체 뭘까? 그 예시는 일본에서 한 발 먼저 첫 단독 콘서트를 벌인 포미닛이 충분히 보여줬다.
일본뉴스전문 포털사이트 제이피뉴스(www.jpnews.kr) 5월9일자 ‘포미닛 日 첫 콘서트 여자 관객이 90%?’는 “5월8일, 5인조 여성그룹 포미닛의 일본 첫 단독 콘서트가 도쿄에서 열렸다. 오다이바에 있는 행사장 ‘제프 도쿄’는 오후가 되자 핫핑크 컬러의 포미닛 응원 타월을 목에 두른 팬들이 몰려들었다”면서 “신기한 것은 콘서트장을 찾은 90% 이상 일본인들이 얼핏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학생들이었다는 것. 걸그룹 콘서트에 남성 관객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여성팬들이 가득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포미닛의 음악은 파워풀하고 섹시해요. 다른 그룹과는 다르죠. 힙합 음악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찾아서 듣는 편인데, 한국 가요는 힙합이 많아 취향에 딱 맞았어요” “(포미닛은) 스타일도 좋고, 귀엽고 어른스럽고 매력이 넘쳐요!” “한국 가요는 비트가 살아있고, 서양 음악 분위기가 나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있다”는 등 일본 소녀팬들의 반응을 적었다.
한편 같은 제이피뉴스 뉴스 기사 ‘2010년 걸그룹 일본진출, 불 붙은 이유는?’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전문 월간지 닛케이 엔터테인먼트의 분석 기사 중 “일본 시장에는 R&B나 힙합을 추구하는 여성 아이돌이 거의 전무한 상태인 점도 하나의 이유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파워 넘치는 여성 아이돌의 매력에 신선한 자극을 받고 있다는 것”이라는 내용을 전하며 “어리고 귀여운 콘셉트로 무대에 서는 일본 여성 아이돌과는 다르게 섹시하고, 멋있고, 옷도 잘 입고, 춤도 잘 추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여성층 공략 전략’의 기본 모토는 10~20대 여성층의 ‘동경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 기존 콘셉트처럼 귀엽고 수줍은 모습을 보여주며 율동 수준 안무를 펼쳐야 하는 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섹시하고 파워풀하며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 장르도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이 다수 채택하고 있는 유로댄스 대신 힙합 등 일본이 잘 선택하지 않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것.
한 마디로, 오히려 일본 시장 분위기에 역행해야만 일본 여성층이라는 비주류적 시장, 그러나 탄탄한 베이스의 시장을 얻을 수 있고, 그런 베이스를 통해서만 동방신기처럼 세(勢) 확장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닛케이 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입장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 걸그룹으로 소녀시대가 아닌 포미닛, 카라, 티아라 등을 꼽았다. “특히 포미닛은 귀여운 외모와는 정반대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노래 실력, 여자가 봐도 멋진 매력이 특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소녀시대는 ‘지나치게’ 일본 주류 여성 아이돌그룹 시장 분위기와 일치한다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다.
물론 소녀시대 측도 첫 일본 진출 싱글을 ‘소원을 말해봐’로 결정한 것을 보면 이 같은 흐름을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는 듯하다. ‘소원을 말해봐’는 소녀시대가 처음으로 ‘소녀’를 떠나 성인적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 싱글이었다. ‘소원을 말해봐’ 일본판 ‘지니’가 일본에서 제대로 된 반응을 얻어낸다면, 그건 아마도 ‘닮음’보다는 ‘다름’이 강조됐기 때문이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더더욱 ‘다름’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10~20대 여성층에 어필할 방안들을 다각도로 고심해봐야 한다.
여기서 앞선 뉴스엔 기사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소녀시대는 결국 AKB48과 정면 승부해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AKB48과는 아예 다른 시장에서 승부해야 승산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소녀시대의 건투를 빈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