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기억해야 할 전쟁사② '춘천·홍천 전투'

기사등록 2010/06/24 06:00:00 최종수정 2017/01/11 12:04:19
【서울=뉴시스】정리/이인준 기자

 2. 춘천·홍천 전투(1950. 6.25~30)

 "비, 비상입니다."
 연락병 하나가 25일 아침 8시30분 춘천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제1중대 숙소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전쟁 발발 당시 국군 제6사단은 춘천에는 제7연대를, 홍천에는 제2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또 원주에는 사단 예비부대인 제19연대를 주둔시켰다. 84㎞에 이르는 방어선이었지만 병력은 9000명뿐이었다. 6사단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에 북한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의 공격에 맞서 춘천, 현리, 말고개 일대에서 방어전투를 치렀다.

 초기 북한군의 공세는 매서웠다. 북한군 제2사단이 전차 1개 연대를 증강해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다. 특히 북한군 제12사단은 스스로 정예 사단이라 칭하는 등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30여 대 자주포와 병력 3만5000명 등 우세한 화력과 병력을 앞세운 공격이 거듭됐다.

 하지만 6사단은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4일, 다른 부대들은 2개월 동안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면서 외박과 외출로 많은 병사들이 부대를 비웠다. 하지만 6사단은 김종오 사단장의 통제에 의해 병력이 부대에 잔류하고 있었다.

 6사단은 전쟁 초기 국군 8개 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안겨줬다. 6사단 7연대는 제19연대와 제16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아 소양강에서 북한군에 맹공을 가해 북한군 제2사단 전력의 40%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6사단 6연대 대전차중대는 화염병을 들고 북한군 전차를 향해 돌진할 육탄특공대를 조직했고, 이들은 맨 몸으로 전차 두 대를 파괴하는 공적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북한군 제2사단은 소양강에서 국군에 격퇴당해 춘천 공격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군의 공격은 본격화 됐다. 박격포와 곡사포의 포탄이 춘천 시내에 쏟아졌다.

 하지만 국군 제6사단은 말고개에서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말고개의 지형적인 이점을 이용하며 공격했다. 특히 28일에는 북한군 전차 10여 대를 파괴하는 개전 이래 최대 전과를 거뒀다. 이로써 6일 동안 방어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를 줌으로써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당시 수원까지 최단 시간 내 남진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계산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예하 제2사단에게 춘천 북방으로 침투해 단숨에 춘천을 점령하도록 하고, 제7사단은 인제-홍천에서 국군의 퇴로를 차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결국 공격시작 4일만에 춘천 중심가로 진출할 수 있었을 정도로, 수도권을 우회해 부대를 움직이려던 당초의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이후 국군 제6사단은 서울 함락의 징후가 인지하고 횡성, 원주, 제천, 충주로 작전상 후퇴하며 전열을 정비할 기회를 벌었다.

 춘천-홍천 전투의 성과는 '시간'이었다. 갑작스런 전쟁 상황에서도 북한군에게 고지를 쉽게 내어 주지 않고 일부 방어에 성공하면서 유엔군의 참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28일 서울이 함락 돼 수원으로 이동한 육군본부는 7월4일 다시 대전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미 지상군이 7월5일 참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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