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댄서 최승희,북 애국열사 묘지에 잠들다

기사등록 2011/11/18 13:55:26 최종수정 2016/12/29 11:09:43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한국 근대무용의 여명을 연 무희 최승희(1911~1969) 관련 새로운 사료가 대거 발굴됐다. 

 신나라레코드는 18일 "최승희 탄생 100년을 맞아 그녀의 작품 전기와 중기, 후기를 모두 담은 총괄편을 24일 발매한다"며 "그동안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월북 후의 모습과 공연 영상, 노래 등이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최승희가 1946년 북으로 넘어간 이후의 이 자료들은 1961년 일본 사회당(현 사민당)의 호아시 게이 의원이 최승희무용단을 일본으로 초청하기 위해 방북, 최승희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최승희 관련자료는 주로 월북 이전의 것이었다.

 김연갑(57)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이사는 "북한과 접촉하는 러시아가 최승희 관련자료를 단편적으로 한 두 컷 보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학계 전유물이었고 이번처럼 대중에게 최승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료는 없었다"며 "컬렉션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자료가 방대하다"고 전했다.

 또 "최승희는 아리랑을 세계에 알린 한류 1세대다.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등은 세계를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인 무용가라고 최승희를 극찬했다"며 "최승희의 예술 세계와 활동상이 재조명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CD 4장과 DVD 1장, 책 1권 세트로 이뤄졌다. CD는 최승희가 무용과 함께 관심을 기울인 무용음악으로 채워졌다. 최승희가 북에서 일궈낸 가장 큰 공적으로 평가받는 조선민족무용 기본동작, 아동무용 기본동작 음악도 담았다.

 가수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최승희의 노래 3곡이 실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승희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 '향수의 무희'(작·편곡 최승희), '반도의 무희'의 또 다른 삽입곡 '축제의 밤', 그리고 최승희가 우리말로 불러 녹음한 유일한 곡인 '이태리의 정원' 등이다.

 신나라레코드 김기순(72) 회장은 "이 세 곡은 최승희가 생전 육성으로 녹음해 남긴 유일한 자료다. 일제시대 때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됐다는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향수의 무희'와 '축제의 밤' 두 곡은 실존 음반으로 최초 공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VD에서는 가무 '물동이춤' '방아 찧는 춤'과 군무 '장미춤' '부채춤', 독무 '장고춤' 등을 추는 최승희를 볼 수 있다. 책에는 최승희의 작품 세계와 활동상이 정리돼 있으며 그녀와 함께 월북, 최승희무용단을 이끈 각계 인사들의 프로필과 무용곡 친필악보 등을 실었다.

 김 회장은 "최승희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했던 최승희무용단 초대 음악감독인 최옥삼 등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앞으로 최승희와 우리 근대음악, 무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 홍천 출신인 최승희는 19세 때인 1929년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조선의 정취를 담은 '봉산탈춤' '칼춤' '승무' 등 근대무용을 선보이며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기에 신무용이라는  춤 사조를 창출한 선구적 인물이다. 1930년대 후반 한국 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떨쳤으며 중국의 매란방,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더불어 아시아 출신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이력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1947년 월북, 김일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우고 무용극 창작에 주력하면서 초기 북한무용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58년 남편 안막의 몰락과 더불어 최승희 역시 1960년 이후 숙청됐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2003년 북이 방송을 통해 사후 복권됐다고 발표했다.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된 것이 확인됐다.

 kje132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