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배터리 멈춰 세운 광물의 역습 [신간]

기사등록 2026/11/06 14:28:19

책 '광물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올 초 미국-이란 전쟁 발발 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글로벌 산업 현장의 숨통을 죈 진짜 복병은 원유가 아닌 '황(S)'이었다.

유가 급등은 비축유 방출과 대체 수입선 확보,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 등으로 어느 정도 충격을 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유 정제 부산물로 얻어지는 황은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코발트·구리를 광석에서 추출하는 '황산'의 필수 원료다. 중동발 황 공급망의 교란과 화학 원료 체인의 단절은 단기간에 대체재를 찾기 어려워 세계 광산과 정련소의 가동 중단 위기로 직결됐다.

신간 '광물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시크릿하우스)는 박준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광물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성과 생산 구조, 공급망의 취약성에 집중해 쓴 책이다.

저자는 각각의 광물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서 생산되는지, 어떤 기술을 거쳐 산업 소재가 되는지, 공급을 좌우하는 국가와 기업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어 세계 주요 지역으로 시선을 넓혀 자원을 가진 나라와 가공 기술을 가진 나라, 자원 없이 첨단 제조업을 발전시킨 나라들이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하는지 다룬다.

"두 금속의 공급망은 희토류·흑연과 더불어 중국 의존도가 가장 극심한 사례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광산 단계보다는 정련에 있다. …바로 이 정련 능력을 중국이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알루미나 정련소와 아연 제련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이, 그 부산물인 갈륨·게르마늄의 회수·정련까지 자연스럽게 독점하게 된 구조이다. 중국은 이 독점을 무역 전쟁의 무기로 활용하면서, 두 금속을 단숨에 세계 공급망 안보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렸다." (205쪽, '12. 작지만 거대한 지렛대, 갈륨과 게르마늄' 중)

"2026년 2월에는 밴스 부통령이 동맹국들과 함께 핵심광물 우대 무역구역을 만드는 '포지(FORGE) 이니셔티브'의 출범을 선언하며 생산 단계별 기준가격(가격 하한) 도입 구상까지 공식화했다. 값싼 중국산이 지배하는 '시장 가격'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동맹국들만의 별도 시장과 별도 가격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보조금의 시대가 가고, 국가가 시장의 규칙 자체를 다시 쓰는 시대가 온 것이다." (292쪽, '21. 북미, 잠자는 거인의 귀환과 공급망 재건의 욕망' 중)

지난 9월 23일 산업통상자원부 제6차 자원안보협의회에서 확정된 한국의 핵심광물 지정계획도 반영했다. 기존 38종에 인·형석·게르마늄과 희토류 10종이 추가되면서 총 51종으로 확대된 한국의 핵심광물 지정 현황을 정리하고, 주요 광물의 전략적 의미와 공급망의 병목 현상을 짚어냈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에 사활을 건 한국이 자원 무기화 시대에 무엇을 지키고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그 해답을 기술과 신뢰의 네트워크, 그리고 시간에서 찾는다. 폐배터리와 폐전자제품에서 유용한 금속을 회수하는 재자원화 기술은 자원 빈국인 한국이 국내에서 핵심광물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 해외 자원개발 투자와 장기 구매계약, 충분한 비축을 통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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