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봐…소설, 대안 보여줘"[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6/10/17 07:00:00

4년만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 펴내

눈(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질문

"타인을 쓰는 데 필요한 기술은 자아를 없애는 일"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김연수 소설가가 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0.17.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우리는 자기 눈이 모든 것을 똑바로 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눈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다른 것은 보지 않으려고 하죠."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을까. 자신의 해석과 편견을 걷어내고 현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소설가 김연수(56)가 4년 만에 펴낸 소설집 '눈(雪) 내리는 삼일포'(문학동네)는 '눈(眼)'이란 단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16일 만난 김연수는 "자기가 진실만 본다고 믿기 때문에 갈등과 투쟁이 생긴다"며 "결국에는 내 눈을 의심하고,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본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시선을 의심하고, 현재에만 머물지 않은 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현상을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대목은 단편 '그리고 밤과 가을이'에서 드러난다. 부고 전문 기자 '정기'는 SF 소설가와 정치인 부고 기사를 쓸 갈림길에 놓여있다. 소설가의 부고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정치인의 부고는 회사의 요구다. 어느 쪽을 실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정기는 딸 '민지'와의 관계 회복을 꿈꾼다. 언젠가부터 서로 멀어졌다고 느낀 그는 어린 시절 딸과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기억을 되짚는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딸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다시 가까워진다. 눈에 문제가 있는 정기의 설정 역시 시선의 한계와 변화를 암시한다.

표제작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도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강조된다. 작품은 2024년 서촌의 한 식당에서 작가가 이수지 작가의 동명 그림책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림책은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1707~1769)의 '고성삼일포도'에서 출발한다. 그림에 좀이 슬어 생긴 구멍을 이수지는 눈(雪)으로 해석했다.

이를 본 작가는 그림 속 구멍을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소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같은 대상을 어떠한 관점에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점을 강조한다.

작품은 학질에 걸린 딸을 구하기 위해 덕암이란 인물이 어의(御醫)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덕암은 약재를 요청하지만, 어의가 거절하자 그림 애호가인 그에게 그림을 전한다. 좀이 갉아먹어 구멍이 생겼지만, 덕암은 이러한 의도가 담긴 작품이라고 말하며 끝내 약재를 받는다.

"구멍이라고 보면 구멍이지만, 눈이라고 보면 눈이 되는 거죠. 저는 말을 다루는 사람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믿으면 사실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느냐죠."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김연수 소설가가 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0.17. kgb@newsis.com

김연수의 집필 방식에도 이 같은 태도가 반영돼 있다. 그는 매일 정오까지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쓴 글은 다음 날까지 고치지 않은 채 둔다. 하루의 경험이 쌓이면 글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고, 그만큼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작가는 "시간이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바꿔줄 수 있다"며 "창작을 하겠다가 아닌 창작이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김연수는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이유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자아를 지우는 일이 가장 상대를 빠르게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작가 역시 집필에도 이 점이 어려웠다고 한다. 자전적 소설이 소설 작법의 시작이라면, 점차 타인을 내세워 이야기를 쓰는 시기가 찾아오면 고난의 시작이란다. 지금도 작품에서 퇴고하는 과정 중 스스로를 덜어내고 있다고 한다.

"타인을 쓰는 데 가장 필요한 기술은 자아를 없애는 기술입니다. 누구를 이해하려고 할 때도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일 수 있습니다."

대신 이런 새로운 인물이 투영되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다양함을 선사한다. 작가는 문학의 역할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현실에는 실패와 상실, 고통이 있지만 기댈곳이 없다. 대신 소설은 대안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김연수 소설가가 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0.17. kgb@newsis.com

한편 작가는 고통과 상실이 반복되는 현실에 회의을 느꼈지만, 최근 낭독회 등을 통해 독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소통하면서 저마다의 절실한 슬픔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의 말에서 그가 "상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가 이에 대한 연장선이다.

"상실을 피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의 뜻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세계가 오히려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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