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학살 연구자, 日정부 자료 분석해 주장
"학살 알면서도 재판에 안넘겨…있어선 안돼"
[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1923년 일본 간토(関東)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은 범인 검거를 가능한 자제하고, 최대한 재판을 하지 않는 형식으로 은폐됐다고 12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연구자 고토 아마네(後藤周)가 당시 일본 공문서 등을 조사해 이같이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과 관련 2023년 "(일본 정부가) 조사한 데 한정한다면, 정부 내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고토 연구자는 "이상하다"며 "내무성, 사법성, 계엄사령부(군), 조선총독부, 각 현·시·정·촌, 각 현 경찰부 등이 조사한 보고서가 여러 종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2023년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개한 '선고비수 제22호(鮮高秘収第22号)'를 예로 들었다. 조선인 학살을 연구한 재일 역사학자 고(故) 강덕상 전 히토쓰바시(一橋)대학 교수가 10여년 전 고서점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문서는 내무성의 요청에 따라 당시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사 야스코치 아사키치(安河内麻吉)가 작성했다.
고토 연구자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横浜)시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발생한 곳이며, 가나가와현에서 가장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음에도,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의 범죄는 14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9건은 용의자가 민중에 의해 살해됐으며, 이름이 확인된 용의자도 5건에 그친다.
고토 연구가는 이들 조선인에 대한 조사도 모호하다면서 명확한 범죄 내용이 기록된 사건은 절도 4건 뿐이라고 전했다. 또 범죄는 1명 혹은 2~3명에 의한 것으로 집단 범죄, 폭동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에 나돌았던 "수백명의 조선인이 습격했다"는 허위 정보의 근원이 될 만한 사건은 정부의 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고토 연구가는 꼬집었다.
반면 범죄자라고 오해받아 조선인이 살해·상해 당한 사건은 80건(사인 170명, 상해 14명)에 달했다.
그에 따르면 피해자는 모두 남성이며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34명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이름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조선인으로 분류돼 있었다.
또한 조선인 대상 범죄 가해자는 모두 민중이며, 80건 가운데 용의자가 특정된 것은 10건 뿐이었다. 6건은 일본인을 공격한 사건이었고, 조선인 살상 사건으로 검거된 것은 3건(살해 2건, 상해 1건)이었다.
다른 내무성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계엄령이 일부 적용된 4개 부·현의 사건 검거 비율은 도쿄부 97.5%, 사이타마현 100%, 지바현 46.1%였던 데 비해 가나가와현은 5.1%었다.
고토 연구자는 "학살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면서도 범인을 검거하지 않고 재판에 넘기지 않는, 근대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처리를 했음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조선인 학살을 정부와 군·경찰이 앞장서서 자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유언비어가 발생했고, 현장에서 경찰관도 이를 용인·지시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는 관련 사건 수사와 검거에 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이 살상한 사건도 분명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가가 학살을 주도했다는 견해는 여러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재일조선인(또는 중국인)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일본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6000여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ci2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