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번진 '암살자(들)' 논란…"역사 왜곡"vs"교육 계기"

기사등록 2026/10/09 13:00:00 최종수정 2026/10/09 13:01:35

교육위 국정감사서도 '암살자(들) 공방

"단체관람 제한"vs"학교 자율성 침해"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사진은 5일 서울 시내 영화관에 걸려있는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2026.10.05.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정예빈 기자 = #. 울산의 M고등학교는 중간고사 이후 학생 선호가 높은 영화 '암살자(들)'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가 취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단체 관람 사실이 알려지고 학교와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계획을 접은 것이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공방이 일선 학교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영화가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 단체 관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과,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관람 제한은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며 교육 기회를 막는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선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지난 7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논쟁의 중심에 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단체 관람 제한 등 교육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영화 검열이자 사상 검증이라고 반박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역사적 사실과 그것을 모태로 한 허구가 들어있는 작품은 학생들이 혼동할 수 있기에 사실과 허구를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영화를 보러 가고 말고 하는 것을 교육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어난 육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와 진상을 추적한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되 일부를 각색해 배후를 둘러싼 의혹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논란이 된 대목은 육 여사 피격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꾸며낸 사건임을 암시하는 설정이다. 이는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는 실제 수사당국의 결론과 어긋나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사진은 5일 서울 시내 영화관에 걸려있는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2026.10.05. kch0523@newsis.com

교육계 일각에서는 영화가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여지가 있는 만큼 교육활동인 학교 차원의 단체 관람은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학생들에게 미칠 교육적 영향까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로 넘길 수 없다"며 "학교(교원)가 주관하는 단체 영화 관람은 교육활동인 만큼 학생 선호도나 관람 등급만으로 적절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도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박모양은 "개인이 보러 가는 건 몰라도 학교에서 보러 가는 건 애매하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단체 관람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민원을 넣는 것은 정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바닥이라 이왕이면 논란거리가 없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 관내 초·중·고교의 '암살자(들)' 단체 관람 현황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이 의원은 "이러한 논란의 작품을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시키는지 확인하는 것은 교육기본법 제6조가 규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국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마땅한 검증"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현황 제출 요구가 학교의 자율성을 해치고 정치권의 논쟁을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영화·연극·전시 관람 등 문화예술 활동은 교육과정과 학생의 발달 단계, 교육적 필요를 고려해 학교와 교사가 판단할 영역"이라며 "정치적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국회가 특정 작품의 관람 여부를 확인한다면 학교와 교사의 교육적 판단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영화 관람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역사를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영화를 통해 그 시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허구적 상상에 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알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영화를 보러 가지 못하게 막기보다는 실제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영화에 상상력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학교가 영화를 출발점 삼아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는 "국회가 나서 단체 관람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아니고 학생들이 원해서 단체 관람을 하게 된다면 관람에 그치지 말고 토론의 장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무엇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역사적 논쟁 중인지,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야는 왜 이 문제를 두고 다투는지 등을 주제로 열린 토론을 한다면 역사 왜곡·편향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학교는 어느 한쪽의 주장으로 가르치기보다 그동안 드러난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여러 주장을 소개해야 한다"며 "각 주장의 근거와 반대 측의 증거는 무엇인지, 문제가 왜 생긴다고 보는지, 이를 완화하려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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