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발매…英 레이블 하이페리온과 첫 작업
"빠른 선택 강요받는 시대…바흐는 여러 목소리의 공존 말해"
스승 러셀 셔먼에게 헌정…"스승 공부했던 악보에서 큰 인상 받아"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바흐의 평균율집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다 공통적으로 중요하고,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어떻게 조화롭게 같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질문합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50)가 2년 만에 다시 바흐(1685~1750)에 천착한다. 2024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사이틀에 이어 지난 2일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발매하며 다시 작곡가와 마주했다. 음반 발매를 기념해 국내외 투어도 이어간다.
손민수는 8일 서울 용산구 사운즈S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바흐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단순히 끝나는 게 아니라 빠른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때 어떠한 목소리가 너무 도드라지게 많이 들리면 대다수는 그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 같다"며 바흐 작품이 이와 같은 시대에 여러 목소리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준다고 설명했다.
바흐의 평균율은 총 두 권으로 이뤄져, 각 권당 12개 반음계를 바탕으로 24개의 조성으로 쓰인 총 48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담았다.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로 불린다.
음반은 손민수가 영국 클래식 레이블 하이페리온과 계약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업이다.
손민수는 이번 음반 작업에 대해 "하나하나의 전주곡과 푸가의 녹음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저로서는 어떤 고난의 길을 음악가로서 들어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작업은 음악 본질에 더 다가가는 시도였다. 그는 "모든 음 하나 하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고 담아내려고 했다"며 "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들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손민수에게 바흐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의 스승인 러셀 셔먼과 변화경이 피아니스트로서 평생 공부하고 탐구해야 할 작곡가로 베토벤과 바흐를 꼽았다고 한다. 그가 2020년 베토벤 피아나 소나타 전곡에 이어 올해 바흐 평균율집에 도전한 것도 이에 대한 연장선이다.
손민수는 "(두 스승이) 항상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로 저를 계속해서 어느 방향으로 항해할 수 있게 끌어주시고 밀어줬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저라는 사람이란 음악가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책임을 갖고 해내가야하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회에서 음악가라는 직업을 가진 구성원으로서 제가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목소리에 대해서 대화를 해볼 수 있는 작곡가가 베토벤과 바흐였다"고 덧붙였다.
손민수는 2023년 세상을 떠난 스승 셔먼에게 이번 음반을 헌정했다. "모든 음악활동이 스승에게 헌정하는 마음"이라는 그는 음악을 대할 때 셔먼이라면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란 고민에서 시작해 풀어나간다고 했다.
특히 바흐 평균율은 손민수에게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셔먼이 생전 공부한 흔적이 담긴 평균율 악보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받았다.
손민수는 "스승이 남긴 자취를 하나씩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고 감격스러웠다"며 "다시 옛날로 돌아가 레슨을 받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2번 악보에 셔먼이 로마 시대 시저가 암살 당시 친구였던 브루투스에게 외친 '너마저'에서 영감을 얻어 쓴 습작시가 적힌 것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손민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길러낸 스승이기도 하다. 임윤찬은 지난 2월 음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매하고 자신의 누리소통망(SNS)에 "바흐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조이자 근원"이란 조언을 손민수에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바흐의 중요성이 3대에 걸쳐 이어진 셈이다. 임윤찬은 평균율집으로 손민수에게 첫 가르침을 받았다.
손민수가 연주자로서 큰 시련을 닥쳤을 때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할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곡가도 베토벤과 바흐였다.
2008년 오른손이 부러지고 이후 왼손까지 혹사로 수술을 받게 돼 약 10년 간 연주활동에 차질이 생겼다. 이 순간을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그는 "잃어버렸던 손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그는 "피아니스트라서 너무나도 가혹하게 느껴졌지만, 제가 겪는 고통은 사람이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 중에서 아무것도 아니란 점을 제가 뼈저리게 느껴 말을 주저하게 된다"고 전했다.
손민수는 오는 16일 서울 신영체임버홀을 시작으로 익산, 천안, 울산, 대구, 평택 등에서 국내 투어를 갖는다.
그는 "녹음이 한 음 한 음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보는 탐험의 과정이었다면 연주를 통해 바흐의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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