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락'은 어떻게 가을의 '부산병' 됐나…부녀회 부추전과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 낭만

기사등록 2026/10/10 15:36:53

27년 나이테 새긴 국내 최장수 록페

초유의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 자처한 메가데스 등 화제 잇따라

장애인 관객 어깨로 받쳐 무대 앞까지

모든 소란 품어낸 낙동강변

펜타가 '광기의 통과의례'라면 부락은 '다정한 쉼표'

[부산=뉴시스]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10.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여름 인천 송도의 펜타포트가 진흙투성이 대지 위에서 온몸을 던져 악천후를 돌파하는 '전투와 광기의 통과의례'라면, 10월 초입 낙동강 하구 삼락생태공원의 부산국제록페스티벌(부산락페·부락)은 한 해를 털어내며 상처를 다독이는 '환대와 낭만의 유종(有終)'에 가깝다.

지난 2~4일 성료한 '2026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축제가 끝난 뒤에도 쉬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삼락의 강바람을 앓는 이른바 '부산병'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기획의 산물이 아니라, 27년간 숱한 결핍과 파경을 통과해 오며 축제 스스로 터득한 너른 품에서 비롯된다.

◆바닷물 차오르던 다대포에서 삼락으로…결핍을 견뎌낸 27년의 나이테

2000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첫 닻을 올린 부락의 역사는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2년부터 이어진 '다대포 시절'은 스래시 메탈과 하드코어의 성지였으나, 조수간만의 차로 무대 앞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진풍경을 견뎌야 했다. 때로는 태풍으로 일주일이 연기되고, 해외 거물 밴드의 사기 섭외 파동에 상처 입으면서도 축제는 주저앉지 않았다.

2011년 삼락생태공원으로 둥지를 옮긴 뒤에도 무료 축제의 정체성을 지키다, 2019년 전면 유료화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초기에는 적잖은 진통도 겪었지만, 탄탄해진 자생력은 대선주조 같은 향토 기업의 지속적인 후원과 맞물려 매년 4만 명 이상의 유료 관객이 모여드는 국내 최장수 음악 축제의 뼈대를 세웠다. 결여를 메우기 위해 버텨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축제의 단단한 근육이 된 셈이다.
[부산=뉴시스]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10.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재가 호명한 더 거대한 현존…메가데스의 헌신과 리버틴즈의 정경

어떤 부재는 때로 더 완전한 현존을 부른다. 올해 축제의 개막을 흔든 미국 메탈 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A7X)의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는 자칫 거대한 상실로 남을 뻔했다. 그러나 이미 입국해 있던 전설의 메탈 밴드 메가데스가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라는 유례없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졌다.

손바닥 힘줄이 굳어가는 희소 질환(뒤퓌트랑 구축증)을 안고도 이틀간 세트리스트의 절반을 갈아치우며 프렛을 짓누른 예순다섯 노장의 손끝. 메탈리카 시절의 복수극('메커닉스') 뒤에 옛 동료를 향한 화해('라이드 더 라이트닝')를 이어 붙인 데이브 머스테인의 무대는,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끝내 품어 안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격'의 숭고함이었다.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인 브릿팝 대표주자 '리버틴즈'(리버틴스)의 무대 역시 매끈한 현대 팝이 흉내 낼 수 없는 결함투성이 낭만을 남겼다. 직접 오려 붙인 조잡한 잡지 스크랩북을 만 원에 팔고, 공연 직후 사상구의 낡은 7080 라이브클럽으로 스며들어 뒤풀이를 벌인 그들의 기행은, 소년의 반항을 지나 파경의 흔적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중년의 정직한 폐허였다.
[부산=뉴시스]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10.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노장의 황혼과 청춘의 발화…세대를 품어 안는 음악 생태계

노장들이 삶의 흉터를 내보이며 한 시대를 매듭짓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내일의 씨앗이 움텄다. 무려 289개 팀이 맞붙은 신진 밴드 발굴 프로젝트 '2026 루키즈 온 더 부락'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4인조 브릿팝 밴드 '에디앤더브릭스'의 약동이 대표적이다. 새 EP 수록곡 무대로 현장을 장악하며 신(scene)의 시선을 낚아챈 이들의 패기처럼, 부락은 과거의 거장을 경배하는 박제된 기념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숨결을 부지런히 길어 올리는 유기적인 생태계의 품을 함께 증명했다.

◆부녀회 부추전과 서클핏…모든 소란을 품어주는 '가을의 자리'

부락이 지닌 낭만의 정점은 무대 밖 로컬의 온기에서 완성된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은 곳은 화려한 F&B 브랜드가 아닌, 축제장 인근 사상 한신2차 아파트 부녀회가 부쳐낸 바삭한 부추전과 푹 끓여낸 소고기국밥 부스였다. 소음 민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던 이웃들이 외지에서 온 청춘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광경은 축제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지역 상생의 풍경이었다.
[부산=뉴시스]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10.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밴드 '아도이(ADOY)'의 몽환적인 신스팝 무대 위로 비슷한 기간에 부산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한 '부캉이' 인형이 불쑥 나타나 관객들의 무장해제를 이끌어내고, 스래시 메탈의 살벌한 리프 위로 야광봉을 돌리는 서브컬처의 춤판(오타게)이 포용되고, 히든스테이지 노래자랑에서 발라드가 흘러나오자 펄럭이던 깃발을 얌전히 접고 잔디밭에 드러눕는 관객들의 여유. 부락에는 타인을 밀어내는 날 선 전투 대신, 미숙함과 이질성을 가만히 감싸 안아주는 관대함이 흐른다.

◆휠체어의 크라우드 서핑…'우정원정대'와 관객이 완성한 무경계의 연대

이번 부락 3일 차가 남긴 가장 눈부신 정경은 잔디밭 한가운데에서 터져 나왔다. 무대 맨 뒤편 휠체어 전용석에 머물러 있던 지체장애인 관객을 주변 관객들이 양팔로 번쩍 받쳐 들고, 물결치듯 무대 앞 펜스까지 크라우드 서핑을 이어간 것이다. 휠체어를 탄 채 찰랑이는 사람들의 어깨를 타고 나아가는 그 아찔하고도 찬란한 부유. 맹렬한 사운드를 뿜어내던 일본 메탈코어 밴드 '하나비에(HANABIE.)'의 보컬 유키나(Yukina)도 그를 뜨겁게 환영했다.

장애인도 축제의 들끓는 열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배리어프리 프로젝트 '우정원정대' 부스에서 수많은 관객이 응원의 배지를 가슴에 달았던 그 마음들이, 마침내 무대 앞 현장에서 실존의 연대로 형상화된 순간이었다. 누구도 배제되거나 시야의 변방에 고립되지 않고, 타인의 어깨를 기꺼이 받침대 삼아 함께 솟아오르는 풍경.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축제란 결국 무대 위의 음악가가 아니라, 곁에 선 타인을 밀어내지 않는 관객들의 손끝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했다.

완벽한 정답만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부락은 기꺼이 실패하고 우연에 기대며 엉성한 틈새를 내어준다. 낙동강변의 갈대밭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속에서 그 결핍투성이 낭만을 한 번이라도 호흡해 본 이들이라면, 가을마다 지독한 '부산병'을 앓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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