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극 얼음 뚫어 우주 비밀 풀었다…'아이스큐브' 할젠 교수 노벨상 영예(종합)

기사등록 2026/10/06 20:48:24

남극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 이끈 프랜시스 할젠 교수 노벨물리학상 단독 선정

물질과 거의 반응 않는 '유령 입자'…먼 우주 발생원 추적

남극 얼음 1㎦에 광센서 5160개…입자 반응 때 생긴 빛 포착

한국천문연구원 ·국내 대학도 국제 공동연구 참여… "다중신호 천문학 지평 열어"

[서울=뉴시스] 프랜시스 할젠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석좌교수. 202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2026.10.06. (사진=미국 국립과학원)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정민 오동현 김재영 기자 = 올해 노벨물리학상 영예는 남극 얼음을 거대한 관측 장치로 바꿔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유령 입자'를 붙잡은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중성미자'를 관측해 빛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우주 정보를 읽어내는 길을 열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6일(현지 시간) 프랜시스 할젠(82)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석좌교수를 올해 노벨물리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단독 수상은 1992년 프랑스 물리학자 조르주 샤르파크 이후 34년 만이다.

할젠은 남극 중성미자 관측시설 '아이스큐브'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천체물리학적 기원의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마크 피어스 노벨물리학상위원장은 "그의 끈기와 과학적 비전이 새로운 종류의 천문학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겸 핵입자천체물리연구소장은 할젠이 아이디어를 직접 제시하고 오랫동안 실험을 이끌었다는 점을 단독 수상 배경으로 꼽았다.

◆빛으로 못 보는 우주…'유령 입자'가 전하는 단서
[스톡홀름=AP/뉴시스] 6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과학원에서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화면에는 수상자인 프랜시스 할젠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교수의 사진이 표시돼 있다. 2026.10.06.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질량이 매우 작은 기본입자다. 지구나 사람 몸을 통과하면서도 대부분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아 '유령 입자'로 불린다.

우주에는 입자를 지상의 실험실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는 천체가 있다. 그곳에서 입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가속되는지 알면 블랙홀 주변 등 극한 환경에서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있다.

빛과 전하를 띤 입자만으로 이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빛은 이동하면서 물질에 흡수될 수 있고 양성자처럼 전하를 띤 입자는 우주 자기장에 경로가 휘기 때문이다.

반면 중성미자는 자기장에 경로가 휘지 않고 물질과도 거의 반응하지 않아 먼 우주의 발생원 정보를 간직한 채 지구에 도달할 수 있다.

◆남극 얼음 1㎦가 검출기…잡히지 않던 입자의 흔적 포착
[서울=뉴시스] 아이스큐브 (사진=스웨덴 왕립과학원) *재판매 및 DB 금지

할젠은 1988년 남극 얼음을 활용해 중성미자를 관측하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중성미자가 얼음 속 원자핵과 드물게 반응할 때 생기는 빛의 흔적을 센서로 잡아내자는 아이디어였다.

깊은 곳의 투명한 얼음은 빛을 관측하기에 유리하다. 다만 고에너지 우주 중성미자는 드물게 도착하고 대부분 그냥 통과한다. 충분한 반응을 관측하려면 엄청난 양의 얼음이 필요했다.

이에 할젠은 한 변이 1㎞인 정육면체에 해당하는 약 1㎦의 얼음을 검출기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 구상을 국제 연구진과 함께 구현한 시설이 남극점의 아문센-스콧 기지 인근에 있는 '아이스큐브'다. 얼음 표면 아래 1450~2450m 깊이에 설치한 5160개 광센서로 빛의 흔적을 포착한다.

중성미자 자체를 사진처럼 찍는 것은 아니다. 얼음 속 물질과 반응하면서 생긴 뮤온 등 전하를 띤 입자가 남기는 빛을 검출한다. 빛의 분포와 도착 시각 등을 분석해 중성미자의 방향과 에너지를 추정한다. 이 빛을 '체렌코프 빛'이라고 한다. 전하를 띤 입자가 얼음이나 물속에서의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생긴다.

양 교수는 이론물리학자였던 할젠의 대담한 구상에 대해 "과연 될까 했는데 그분의 리더십이 아주 컸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어 "학계 원로였지만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는 열정은 마치 30대 조교수 같았다"고 말했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2013년 태양계 밖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중성미자가 발생한 천체를 찾는 연구가 본격화됐다.

◆중성미자에 전파·감마선 더해…韓도 연구 참여

중성미자 관측을 망원경 관측과 결합하면 발생한 곳을 찾고 그곳에서 벌어진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신호를 함께 살피는 '다중신호 천문학'이다.

2017년 검출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대표 사례다. 관측 방향과 시점이 블레이자 'TXS 0506+056'의 감마선 활동과 맞아떨어져 이 천체가 중성미자의 발생원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했다. 연구진은 2018년 관련 결과를 발표했다. 블레이자는 초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제트가 지구 쪽을 향하는 활동은하다.

김진호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진화연구센터장은 "천문연구원에서도 전파 관측으로 블레이자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이를 아이스큐브 관측과 함께 활용하는 다중신호 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와 성균관대도 아이스큐브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자로 중성미자의 종류가 바뀌는 '진동'을 연구한 RENO 실험이 대표적이다. 국내 연구진은 2012년 관련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유튜브 '안될과학' 운영자인 과학커뮤니케이터 강성주 박사(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는 "2002년 수상이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실제로 검출해 '중성미자 천문학'을 열었다면 할젠과 아이스큐브는 훨씬 높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로 우주의 극한 현상을 관측하는 단계까지 이 분야를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할젠은 수상 소감에서 "이전부터 내가 노벨상을 타리라는 예상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실제 수상자 선정 연락을 받고 지금까지도 '묘하고 이상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며 "이번 상이 대규모 공동연구진과 오랜 기간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 odong85@newsis.com, k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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