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데스, 대지 가른 '鐵聲', 폐부 찌른 '쇠맛'…삼락에 새긴 낭만 "시 유 투모로우"

기사등록 2026/10/03 09:09:55

2일 부산록페스티벌 현장 리뷰

어벤지드 세븐폴드 공백 메우며 국내 록페 사상 초유의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

19년 만의 방한에 쏟아낸 12곡의 응축

굽어가는 손가락 딛고 선 고별전

아픈 후배 감싸 안은 노장의 인자한 미소

"명성(Reputation) 대신 인격(Character) 남기다"

[부산=뉴시스] 2일 오후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19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메가데스. 2026.10.02.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이재훈 기자 = 가을의 초입, 낙동강 하구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강바람을 뚫고 묵직한 쇠 냄새가 번졌다. 2일 밤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펼쳐진 '2026 부산국제록페스티벌'(부산국제락페스티벌·부락페) 삼락스테이지. 본래 무대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미국 메탈 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A7X)의 프런트맨 맷(엠(M) 섀도우스)이 갑작스러운 중병으로 항공편에 오르지 못하면서, 축제의 개막일은 자칫 거대한 공백과 상실의 밤으로 침몰할 뻔했다.

그러나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무대에 오른 것은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스래시 메탈의 제왕 '메가데스(Megadeth)'였다.

1998년 첫 내한 이래 2007년까지 네 차례 단독 공연을 펼쳤으나 이후 19년 동안 한국 땅을 밟지 못했던 이들이다. 당초 둘째 날인 3일 무대에 오르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미 부산에 입국해 있던 밴드는 주최 측의 긴급한 제안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국내 대형 록 페스티벌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이틀 연속 헤드라이너'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자처한 것이다.

메탈의 거목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물리적 무대 채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료 예술가를 향한 지극한 예의이자, 시간과 병마라는 필멸의 한계 앞에 선 예술가가 관객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형태의 '신의(信義)'였다.

◆철성으로 빚어낸 압도적 성채…기교를 넘어선 '쇠맛'의 타격감

리허설 당시 드럼 페달이 베이스 드럼을 밟아 울리는 묵직한 진동만으로도 삼락의 잔디밭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뒤편을 빈틈없이 에워싼 스피커는 그 자체로 침범할 수 없는 '철성(鐵城)'의 위용을 과시했다. 디지털 시뮬레이터가 흉내 낼 수 없는, 순도 높은 전류가 진공관을 통과하며 뿜어내는 날것의 질감. 헤비메탈의 미학을 논할 때 거듭 강조돼 온 그 특유의 '쇠맛'과 서늘한 '철성(鐵聲)'이 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원년 멤버이자 밴드의 절대적 군주인 데이브 머스테인(65)을 호위하는 현재의 진용은 그야말로 빈틈없는 장인들의 결사체였다. 과거의 데이브 엘렙슨을 대신해 합류한 베테랑 베이시스트 제임스 로멘조(James LoMenzo)는 묵직하면서도 유려한 포켓(pocket) 연주로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를 세웠고, 드럼을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더크 베르뷰런(Dirk Verbeuren)은 대포알 같은 탄속으로 음악에 가차 없는 추진력을 부여했다. 여기에 핀란드 출신의 젊은 거장 기타리스트 테무 맨티사리(Teemu Mäntysaari)가 뿜어내는 정교무비한 속주는 머스테인의 날카로운 리듬 기타와 맞물려 숨 막히는 트윈 기타의 전율을 빚어냈다.

음반보다 더 또렷하고 명징하게 꽂히는 악기들의 분리도 속에서, 네 명의 음악가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종일관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최고조로 몰아붙였다.

◆아픈 동료를 향한 변론, 그리고 무대를 품는 어른의 온기
[서울=뉴시스] 메가데스 (사진 =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제공) 2026.10.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 중반, 땀으로 젖은 적갈색 머리칼 사이로 머스테인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삼락생태공원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젊은 날의 오만과 독설로 무장했던 스래시의 악동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곳엔 아픈 후배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혼란스러워할 관객들을 다정하게 다독이는 한 명의 노신사가 서 있었다.

"원래는 어벤지드 세븐폴드가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엠 섀도우스)는 제 친구인데, 지금 아픕니다. 아주, 정말 많이 아파요. 그래서 저에게 밴드 멤버들을 데리고 와서 오늘 밤 여러분을 위해 대신 연주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더군요. 그러니 오늘 이 무대는 여러분만큼이나 저에게도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입니다."

상처받았을 팬들의 마음을 먼저 보듬고, 부재한 동료의 명예를 지켜주는 이 거장의 품격에 관객들은 뜨거운 함성으로 화답했다.

국내 음악 동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날 오후 삼락 무대에 올랐던 밴드 '페퍼톤스' 신재평은 자신의 공연 중 벅찬 목소리로 "오늘 이 네 글자만은 꼭 외치고 가겠다. 메가데스 만세!"를 외치며 록의 대선배를 향한 헌사를 바쳤고, 메가데스 멤버들처럼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Xdinary Heroes)' 기타 준한을 비롯한 후배 뮤지션들 역시 관객석과 무대 뒤편에서 전설의 귀환을 경배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12곡의 맹렬한 파동…스래시의 연대기를 횡단하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세트리스트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응축의 미학이었다. 밴드명과 동명인 최신 17집의 리드 싱글로 파괴적인 리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로 시작된 포격은 곧바로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 사운드트랙 명곡 '앵그리 어게인(Angry Again)'으로 이어졌다.

초창기 테크니컬 스래시의 교본이라 불리는 '행거 18(Hangar 18)'에서는 머스테인과 맨티사리의 기타 배틀이 맹렬한 불꽃을 튀겼고, '스웨팅 불리츠(Sweating Bullets)'의 신경질적인 독백과 신곡 '아이 돈 케어(I Don't Care)'의 펑크적 반항심이 연이어 삼락의 밤공기를 찢었다. 이어 묵직한 그루브의 '카운트다운 투 익스팅션(Countdown to Extinction)', 세기말의 성찰을 담은 '드레드 앤 더 퓨지티브 마인드(Dread and the Fugitive Mind)'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트러스트(Trust)'가 연주되며 관객을 집단적 최면 상태로 몰아넣었다.

공연의 절정은 단연 '토네이도 오브 솔스(Tornado of Souls)'였다. 현란하게 휘몰아치는 전설적인 기타 솔로 구간에서 페스티벌 전광판에는 음악에 맞춰 광기 어린 헤드뱅잉을 시전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잡혔다. 또 객석 곳곳에 거대한 서클핏이 만들어지며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난장이 벌어졌다.
[콜럼버스(오하이오)=AP/뉴시스] 메가데스(Megadeth)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
이어 전 세계 스타디움을 뒤흔든 리프의 '심포니 오브 디스트럭션(Symphony of Destruction)'과 80년대 메탈의 금자탑 '피스 셀스(Peace Sells)'가 터져 나오자 수만 명의 관중은 일제히 목청을 터뜨렸다.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헤비메탈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서사를 지녔다는 '홀리 워즈… 더 퍼니시먼트 듀(Holy Wars… The Punishment Due)'. 질주와 파멸, 완급 조절이 극에 달한 이 연주를 끝으로 12곡의 폭풍 같은 여정이 닫혔다.

◆굽어가는 손가락과 뒤퓌트랑 구축증…명성과 인격을 남기다

이날 무대가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신 진짜 이유는, 사운드의 완벽함 이면에 깃든 머스테인의 서글프고도 장엄한 육체성 때문이었다. 최근 발간된 그의 회고록 '인 마이 다크스트 아워(In My Darkest Hour)'의 출간 기념행사에서 머스테인이 직접 털어놨듯, 그는 현재 손바닥 힘줄이 굳어 손가락이 안쪽으로 굽어가는 희소 질환인 '뒤퓌트랑 구축증(Dupuytren’s contracture)'을 앓고 있다.

목 척추 수술과 요골신경 마비, 그리고 성대를 앗아갈 뻔했던 후두암을 이겨낸 그였지만, 시간이라는 절대적 폭력 앞에서 손가락마저 마비돼 가는 육체의 풍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보컬 전향이나 기술적 타협 대신 "기타를 칠 수 없다면 무대에서 내려오겠다"며 스스로 17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의 결단은, 이번 내한을 사실상 한국 팬들과의 영원한 고별전으로 만들었다.

머스테인은 말했었다. "평판(Reputation)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와 있는 그림자일 뿐이지만, 인격(Character)은 마지막까지 남는다. 나는 내 명성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의 인격이 남기를 바란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도, 기타의 현을 끝까지 쥐어뜯으며 젊은 시절에는 보기 힘들었던 인자한 미소로 관중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에서 관객들은 발견했다.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자의 뒷모습이 얼마나 거룩한지를 말이다.

무대를 내려가기 직전, 땀방울이 맺힌 머스테인이 마이크를 향해 툭 던진 마지막 인사는 삼락의 밤하늘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유브 빈 그레이트, 위브 빈 메가데스. 시 유 투모로우(You've been great, we've been Megadeth, see you tomorrow.)"(여러분은 최고였고, 우리는 메가데스였습니다. 내일 봅시다.)

파멸 앞에서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살고, 치열하게 연주하겠다(Live hard, play hard)"던 약속. 그 약속을 품에 안은 전설은 내일 또다시 펼쳐질 마지막 성전을 기약하며 묵묵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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