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창작물 특성상 형사처벌 쉽지 않아"
허위 사실·고의 입증해야…유족 고소도 필요
형사처벌 사례 드물어…민사책임은 인정 여지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박준성 인턴기자 =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형사고발로까지 번졌다. 실제 사건에 상상력을 더한 영화 속 설정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법조계는 영화에 창작적 해석이 반영되는 데다 명예훼손죄의 성립 요건도 까다로운 만큼 '암살자(들)' 제작진이 실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영화는 상상력을 더해 박 전 대통령이나 중앙정보부가 육 여사 피격 사건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같은 설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논란은 고발로까지 번졌다.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영화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도 영화 속 묘사가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형사처벌의 관건은 영화적 상상력에 법적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느냐다. 법조계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상상력이 더해진 창작물인 만큼 형사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영화는 제작자의 해석이나 의견이 반영되는 만큼 극중 설정을 곧바로 구체적인 '사실'을 전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암살자(들)'은 영화 시작 전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일부 내용은 각색됐다고 밝히고 있어, 극중 설정을 구체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는 판단이다.
석상엽 법무법인 일로 변호사는 "통상 창작물인 영화에는 제작자의 해석이나 의견이 담기는 만큼 그 내용을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낮다"며 "제작자의 해석이 담긴 일종의 의견 표명이라고 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해석이 가미된 것이라고 사전에 고지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나 해석은 객관적으로 참·거짓을 가리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존 수사 결과와 다른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제작진이 해당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도 작품에 담았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해 처벌 문턱이 높다고 짚었다.
황진섭 법무법인 대륜 부대표 변호사는 "팩션(팩트+픽션)이 처벌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허구라서'가 아니라 허위 사실과 이에 대한 고의까지 형사재판의 기준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넘어야 할 절차적 문턱도 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로, 유족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 유족이 직접 고소하지 않는다면 제3자의 고발만으로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제3자의 고발은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처벌을 위한 고소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창작물을 둘러싸고 명예훼손 고소·고발이 제기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제작진이 실제 형사처벌까지 받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KBS 대하드라마 '서울1945'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택상 전 국무총리의 후손들은 드라마가 이들을 친일파나 여운형 암살의 배후로 묘사했다며 제작진을 고소했다. 검찰은 제작진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영화 '명량'도 배설 장군 후손들이 허구적 묘사로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제작진을 고소했지만 불기소 처분됐다. 두 사건 모두 창작물에 허구가 가미됐다는 점이 주요하게 고려됐다.
다만 민사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있다. 형사재판과 달리 고의가 없더라도 과실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가 제작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법원이 관객이 실제 사실로 오인할 수 있다며 일부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도록 했고, 손해배상 1심에서는 제작사가 박씨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사상 책임도 인정되기 쉽지는 않다.
영화 '실미도'의 684부대 훈련병 유족과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신숙주 후손들이 각각 허구적 묘사로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창작물의 특성상 일정 범위의 각색과 허구가 허용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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