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최준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엄마의 대본 앞장은 열이면 아홉이 찢어져 있었다"며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던 나를 위해 그려준 들장미 소녀 캔디. 이번에는 준희가 한번 칠해보는 거야. 그 말에 나는 두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얌전해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엄마가 대사를 읊으면 색을 칠하고, 목소리가 멎으면 고개를 들었다. 그림을 완성하는 것보다 엄마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완성된 캔디는 손을 너무 많이 타 늘 너덜너덜했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그림만 사랑했다. 종이가 닳아가는 동안에도 그 위에 엄마가 그어준 선은 남아 있었다"고 했다.
최준희는 "이제 내 발은 바닥에 온전히 닿고,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하루를 제법 잘 보내다가도 문득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며 "그런 날이면 아직도 색칠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던 아이가 된다. 대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은 기다리게 된다"고 했다.
또한 "기억은 적어서 같은 장면을 자꾸 꺼내 보게 된다. 혹시 닳을까 아끼다가도 보고 싶어서 또 펼친다. 선 밖으로 삐져나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을 골라도 끝까지 한번 해보자가 엄마의 성격이었다"고 했다.
끝으로 최준희는 "다음에 만나면 이번엔 그림 대신 내가 살아온 날들을 잔뜩 펼쳐놓을게"라며 "엄마는 그때처럼 내 옆에 앉아 있고 나는 아마 또 이야기하다 말고 엄마가 거기 있는지 자꾸 확인할 것 같아"라고 했다.
함께 공개된 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 고인, 오빠 최환희와 함께 바닷가를 찾았던 순간이 담겼다.
특히 "엄마는 환희랑 수민(준희)이를 바다만큼 사랑해요"라는 메모 속 고인의 친필 글씨가 공개돼 보는 이들의 먹먹함을 더했다.
1988년 데뷔한 고인은 드라마 '질투'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편지' 등으로 1990년대를 풍미했다. 이후 드라마 '장밋빛 인생'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통해 굳건한 존재감을 입증했다. 2008년 10월 2일 향년 40세로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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